공소권 남용과 형사소송의 공정성 — 검사의 이중역할, 기소 무효를 이끈 사법적 통제
수원고등법원 2025노425 판결
형사사법제도의 공정성과 적법절차는 국민의 신뢰와 직결된다. 검찰권의 작용은 이 중에서도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특히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어떻게 작동하고 통제되는지는 법치주의의 실제 작동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수 있다. 이번 수원고등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김종기)는 2025노425 판결에서 검사의 이중적 역할을 문제 삼으며 “자신이 수사개시한 사건을 직접 기소한 것은 절차상 중대한 위법”이라 판단하고,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한 공소를 기각하였다. 이 판결은 단순한 절차 위반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 및 검찰권 견제의 실효성을 실무적으로 구현한 보기 드문 사례라 할 것이다.
검사의 이중역할 금지: 검찰청법 제4조 제2항의 실질적 의미
판결의 핵심은 단순하다. 검찰청법 제4조 제2항은 명시한다. “검사는 자신이 수사개시한 범죄에 대하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이 조항의 본질은 검사의 객관의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수사 단계에서 형성된 선입견이 기소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기소 판단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담당 검사는 수사 초기 피의자신문조서를 직접 작성하는 등 사실상 수사 개시행위에 해당하는 절차를 진행했고, 이후 같은 사건에 대해 본인이 직접 공소를 제기하였다. 수사와 기소를 동일인이 담당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절차 위반이며,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에 따라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에 위반되어 무효’인 경우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수사의 공정성과 기소의 적정성 사이의 벽
형사소송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사검사와 기소검사 간의 역할 분리가 제도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검찰청법은 이 원칙을 명문화한 것이다. 수사검사는 사실관계를 수집·확인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기소검사는 그러한 수사기록을 기초로 독립적인 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처럼 수사검사 본인이 기소권까지 행사하게 되면, 이미 수사 과정에서 형성된 인상이나 편견이 기소여부에 부당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이나 공직선거법처럼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사건에서는 그러한 우려가 더욱 가중된다. 검사의 객관의무와 공정한 형사절차 보장을 위해 법이 요구하는 역할 분리는 단지 형식적 원칙이 아니라 실질적 보장의 핵심 장치인 것이다.
검찰권의 통제는 실현되고 있는가?
이 판결은 현실에서 오랫동안 관행처럼 유지되어 온 검찰 내부의 ‘기소편의주의’에 강한 제동을 건 판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실무상 검사들이 관할 지청 내에서 수사 및 기소를 연속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적지 않다. 특히 인력 부족, 사건 규모, 조직 운용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같은 검사가 수사에서 기소까지 모두 처리하는 일이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그러한 실무상 관행이 법령의 명확한 문언을 넘어설 수 없음을 천명한 것으로, 검찰 내부 시스템에도 구조적 재정비의 필요성을 던진다. 수사개시의 시점과 범위, 그에 따른 공소권 배제 요건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며, 검찰의 직무 배당에 있어서도 법률의 취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기부행위와 정치자금의 경계: 실체 심리 생략의 한계
한편 이 사건은 수건, 노트북 가방, 공연 등 금품 및 서비스를 제공한 행위가 ‘기부행위’ 또는 ‘부정한 정치자금 지출’에 해당하는지가 실체적 쟁점이었지만, 절차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실체 심리는 생략되었다. 실체적 판단이 공소 기각으로 종결되었다는 점은 향후 유사 사건에서 유·무죄 판단의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게 남을 수 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다만 이번 판결은 절차적 위법만으로도 공소를 무효화할 수 있는 법원의 강력한 통제 기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론: 형사사법 절차의 신뢰 회복을 위한 단초
수원고등법원의 이 판결은 형사소송절차의 적법성과 검사의 객관의무를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실질적으로 요구하고 그 위반 시 공소 전체가 무효화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형사정책상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의 목적은 진실 발견이 아니라, 적법한 절차를 통해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진실 발견이라는 이름하에 절차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며, 향후 검찰권 남용을 견제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판례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