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이행항변권의 묵시적 포기와 연체료 약정의 해석 기준 – 대법원 2025다209893, 2025다209894 판결(파기환송)을 중심으로"
부동산 매매계약이나 상가 분양계약을 둘러싼 소송에서 쌍방의 채무가 ‘동시이행관계’에 있는지, 어느 일방이 이행을 먼저 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혹은 동시이행항변권을 포기했는지의 문제는 계약 이행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쟁점 중 하나다. 특히 계약서에 ‘연체료’ 조항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이는 단순한 이자 약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이행관계와 항변권의 존부와도 얽혀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실무상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대법원은 2025다209893(본소), 2025다209894(반소) 판결에서 연체료 약정이 존재한다고 하여 반드시 동시이행항변권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으며, 묵시적 포기라고 주장하더라도 그 해석은 엄격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특히 이 사건에서는 수분양자인 원고들이 분양계약을 해제하고 기지급한 계약금 및 중도금의 반환을 청구한 반면, 분양자인 피고는 반소로 잔금 및 연체료의 지급을 청구하였고, 이에 원고들이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하면서 쟁점이 형성되었다.
1. 동시이행항변권의 본질과 묵시적 포기의 가능성
민법상 쌍무계약에 있어 각 당사자의 의무는 통상적으로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즉, 한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행 없이 자기 의무의 이행을 강요받지 않도록 보호받는 제도이다. 부동산 매매계약에서는 매수인의 잔대금 지급의무와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 서류 교부의무가 이러한 동시이행관계로 보아진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도 이 기본 원칙을 확인하며, 동시이행항변권은 명시적으로도 포기할 수 있지만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고 전제하였다. 다만 그 해석에 있어서는 “엄격하고 신중해야 하며, 계약문언과 사정 전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계약서에 연체료나 지체상금 조항이 있다 하여 곧바로 묵시적 포기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 취지다.
2. 연체료 약정의 해석과 법적 성질
이 사건 분양계약 제4조에는 매수인이 잔금을 기한 내에 지급하지 않을 경우 연체료를 가산하여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원심은 이를 근거로 수분양자인 원고들이 사실상 동시이행항변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고, 잔금 및 연체료 지급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체료 약정은 이행지체가 발생한 경우의 손해배상을 예정한 조항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 매수인이 동시이행항변권을 포기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행지체가 발생해야만 연체료 책임이 성립하며, 지체 책임을 따지기 전에 먼저 매도인의 의무이행 또는 이행제공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논리를 견지하였다.
3. 상대방 이행 준비의 정도와 신의칙에 따른 판단
이번 판결의 또 다른 핵심은, 매수인의 이행 지체가 성립하려면 매도인이 먼저 소유권이전등기서류를 교부할 준비를 마쳤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하여, "쌍무계약에서 일방 당사자의 이행 제공이 과도하게 엄격하면 오히려 불성실한 상대방에게 구실을 줄 수 있으므로, 이행의 제공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들이 잔금 지급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반면 피고가 소유권이전등기서류의 교부를 위한 적극적 준비를 하였는지에 대한 사실심 판단이 부족했다. 따라서 대법원은 원심이 이러한 실질적 이행 준비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단순히 연체료 조항에 기초하여 원고들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보고, 이를 파기환송하였다.
4. 실무적 시사점
이번 판결은 다음과 같은 실무적 교훈을 제공한다.
첫째, 연체료 조항이 포함된 계약이라 하더라도, 이는 단지 지체에 대한 손해배상 예정에 불과하며, 매수인이 동시이행항변권을 포기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계약문언이 명확히 항변권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 이상, 그 해석은 극도로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매수인의 지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매도인의 이행 준비 수준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이는 계약이 쌍무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본질에서 비롯된 당연한 논리로, 대법원은 이를 구체적 사실에 입각해 따져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셋째, 계약 해제 후 분양대금의 반환을 구하는 본소와 잔대금 지급을 구하는 반소가 병합되어 있을 경우, 동시이행관계의 판단은 두 소송 모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항변권 행사 여부에 대한 판단은 본소와 반소의 전체 흐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며, 일부 항변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거나 부분적 포기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넷째, 계약 당사자 입장에서는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동시이행항변권의 유지 또는 포기 여부를 명확히 문언으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연체료 조항이나 지체상금 조항만으로는 포기 의사가 추정되지 않으므로, 이를 피하려면 포기 특약을 명시적으로 기재해야 할 것이다.
결론
대법원은 이번 2025다209893(본소), 2025다209894(반소) 사건에서 쌍무계약에 있어 동시이행항변권은 쉽게 포기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특히 연체료 약정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포기를 추단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동시이행항변권은 계약이행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인 만큼, 이에 대한 포기 해석은 신중해야 하며, 이행지체 여부의 판단에 있어서도 당사자 쌍방의 준비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번 판결은 분양계약, 부동산 매매, 상가거래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잔대금 미지급, 연체료 청구, 소유권이전 거절 등의 쟁점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판례로, 향후 유사 사건에서 폭넓게 인용될 것으로 보인다. 실무가들은 이번 판례의 법리를 꼼꼼히 검토하여, 계약서 작성, 소송 대응, 항변권 행사 여부 판단 등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