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비용 확정절차에서 상계 주장의 시기와 허용범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 – 대법원 2025마5442 결정(파기환송)을 중심으로”
소송에서 승패만큼이나 실무적으로 중요한 것은 ‘소송비용’의 부담과 정산이다. 특히 최종적으로 승소한 당사자라도, 그 과정에서 소요된 비용을 실제로 돌려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소송비용액 확정신청이라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이 정해진 기한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신청인의 청구금액대로 소송비용이 확정된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이와 관련하여 소송비용액 확정절차에서 상대방이 당초 기간 내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더라도, 이의신청이나 항고절차에서 상계를 주장하고 소명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기존 입장을 한정적으로나마 확장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바로 2025마5442 결정이다.
이 사건에서 신청인은 본안소송에서 승소한 후 소송비용을 청구하기 위해 소송비용액 확정신청을 하였다. 이에 대해 피신청인은 민사소송법 제111조 제1항에 따라 송달된 법원의 최고서에 대하여 정해진 기간 내에 아무런 서면도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1심 법원은 피신청인의 자료가 부재한 상태에서, 신청인의 주장만을 토대로 소송비용액을 확정하였다. 이는 민사소송법 제111조 제2항의 내용과 정확히 부합하는 처리다. 같은 조항은 “상대방이 기간 내에 서면을 제출하지 않으면, 법원은 신청인의 비용에 대해서만 결정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피신청인은 위 확정결정에 대해 사법보좌관의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본안소송에서 지출한 비용 내역(인지대, 송달료 등)을 제출하고, 민사소송법 제112조에 따라 쌍방의 비용은 대등액에서 상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자신도 일정 비용을 지출했으므로 이를 감안하여 상계 후 차액만 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항고심)은 피신청인이 정해진 기간 내에 비용계산서와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이의신청과 상계 주장을 배척하였다. 원심은 형식적 절차를 중시한 것이다. 즉, 민사소송법 제111조 제1항에 따른 법원의 최고 기간 내에 상대방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에 추가적인 상계 주장을 허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이러한 해석을 좁은 법문 해석에만 매몰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파기환송하였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하였다.
첫째, 민사소송법 제111조 제1항의 최고는 상대방에게 신청인의 비용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본인의 비용도 함께 정산할 수 있는 절차적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이지, 그 기한을 넘긴다고 하여 소송비용상계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민사소송법 제112조는 쌍방이 부담해야 할 소송비용을 대등액에서 상계하여 차액만을 정산함으로써 간이하고 효율적인 법률관계 정리를 도모하는 규정이며, 이는 당사자 일방의 절차 지연을 이유로 불합리하게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특히 이 사건에서 피신청인은 사법보좌관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에서 이미 관련 비용자료를 제출하였고, 항고심에도 항고이유서와 함께 추가자료를 제출하였던 이상,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비용 정산을 적극 주장한 것이므로, 그 내용을 심리하지 않은 원심의 판단은 부당하다고 보았다.
결국 대법원은, 상대방이 법원이 정한 최고 기간을 넘겼더라도, 그 이후 이의신청이나 항고과정에서 비용자료를 제출하고 상계를 주장한 경우에는, 법원은 이를 심리하고 소송비용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실무상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소송비용액 확정신청 절차는 본안판결에서 정해진 비용부담 비율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며, 단순한 형식적 절차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만약 비용액 확정신청 절차에서 상대방이 최고기간 내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절차에서 실질적 상계 주장과 소명이 있는 경우에는 그 내용을 적극 반영하여야 한다는 것이 이번 결정의 핵심이다. 이는 민사소송법 제112조가 지향하는 간이한 법률관계의 정산과 절차의 경제성을 구현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또한 이번 결정은 사법보좌관 제도의 운영에도 중요한 실무적 함의를 갖는다. 소송비용 확정결정은 통상 사법보좌관이 처리하지만, 그에 대한 이의신청은 다시 판사의 판단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 사법보좌관 결정 이후에 제출된 상계자료 역시 재판부가 실질적으로 심리해야 할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이 명확해진 것이다. 이는 법률상 절차의 적정성과 실질적 정의를 함께 고려한 판단이다.
한편, 이 결정은 무분별한 절차지연이나 남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부 우려를 낳을 수 있으나, 대법원은 “제111조 제2항 단서에 따라 별도의 확정결정이 있는 경우 등 예외사정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하여 재량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따라서 이러한 우려는 재판부의 심리권한을 통해 필터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법원 결정은, 형식적 절차준수와 실질적 정산사이의 균형을 고려한 판단으로서, 소송비용액 확정절차의 실무운용에 큰 전환점을 마련한 판례로 평가된다. 앞으로 당사자들은 소송비용 정산 과정에서 정해진 기간 내 대응을 기본으로 하되, 만일 기한을 놓쳤다 하더라도 이후 절차에서의 적절한 대응을 통해 비용상계를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법률은 실체적 진실의 실현뿐 아니라 절차적 정의와 경제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번 결정은 그 둘을 조화롭게 해석한 모범적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