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고소, 무고죄의 경계 – 울산지법 무고죄 판결을 통해 본 민사와 형사의 위험한 경계
누군가를 형사처벌 받게 하려는 의도로 고소장을 작성하고, 실제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고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무고의 고의가 문제될 때, 법원은 고소인이 진정으로 사실을 오인했는지, 아니면 형사절차를 민사분쟁 해결의 수단으로 악용했는지를 철저히 따져본다. 최근 울산지방법원이 선고한 2024고정251 판결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사실오인의 문제가 아니다. 피고인은 자신과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던 박○복을 상대로, 그가 거액의 전세보증금과 임대관리비 명목으로 4억 4,915만 원을 편취했다고 고소했다. 고소장에는 “처음부터 박○복은 임대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을 편취하였다”는 주장이 담겼다. 그러나 법원이 확인한 사실은 전혀 달랐다.
피고인과 박○복 사이에는 명의신탁과 환매 조건이 붙은 특수한 형태의 부동산 거래가 있었다. 피고인은 자신의 채무를 정리하고자 박○복이 운영하는 법인에게 부동산을 매도했고, 일정 기간 내 환매하기로 약정하였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주장하는 4억 4,915만 원은 실제로는 부동산 명의신탁과 환매계약에 따른 여러 항목을 정산한 금액에 불과했고, 전세보증금 명목의 금전이 오간 사실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박○복이 이 돈을 사기쳐 편취했다고 고소하였고, 수사기관은 이 고소장을 접수했다. 법원은 이와 같은 행위를 두고,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의 허위 고소이며, 동시에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하였다. 무고의 고의가 명백히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피고인은 민사소송 과정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계약을 전제로 환매청구 등을 다투고 있었으며, 그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형사고소라는 압박 수단을 활용한 것이다. 그 결과 피고인은 무고죄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형사처벌의 중대성과 무고죄의 사회적 해악을 고려할 때 법원은 징역형 선고까지도 고려하였으나, 약식명령에 대한 정식재판 청구 사건이라는 특성상 벌금형의 선택으로 제한되었다.
이 판결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민사 분쟁이 아무리 복잡하고 억울하더라도, 형사고소는 결코 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도구로 사용할 수 없다. 고소인이 법적 문외한이라는 이유로 고의가 없었다고 보기에는, 고소장에 담긴 진술의 구체성과 정황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형법 제156조는 “타인을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고죄가 중하게 처벌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개인 간의 갈등을 넘어 형사사법제도 자체의 신뢰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형사고소는 본래 엄정한 형벌권 행사를 요구하는 절차다. 그만큼 고소인은 사실관계에 대해 최대한의 진실성과 신중함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민사소송에서의 불리함을 만회하거나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형사절차를 동원하는 행태는, 단순한 소송 전략의 일탈을 넘어 법적 책임을 수반하는 범죄가 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실제 거래 관계가 다소 복잡했던 사건에서 피고인이 주장한 무고의 ‘고의 없음’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다. 법원은 계약의 복잡성보다 고소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피고인이 금전을 송금한 배경, 부동산의 명의신탁 구조, 박○복 측의 자금 운용 방식까지 면밀히 살핀 후, 단지 ‘법률적 문외한’이라는 주장만으로는 무고의 고의를 부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무고는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형사처벌과 구속의 위험이라는 중대한 불이익을 초래한다. 이 사건에서도 박○복은 고소로 인해 수사 대상이 되었으며,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결국 무죄로 결론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불이익은 결코 가볍지 않다.
법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고소 전에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고, 민사적 분쟁을 형사절차로 가져가려는 유혹을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법원도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 민사와 형사의 경계를 더욱 명확히 하고, 형사절차의 도구화 시도를 엄단함으로써, 형벌권의 남용을 방지하고자 하는 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울산지법의 이 판결은 그러한 기준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판례로 기능한다. 민사분쟁과 형사책임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며, 사실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여 타인을 형사처벌의 위협에 빠뜨리는 일은 사회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이 판결은 분명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