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는 달라."

향기로 덮을 수 없었던 너의 상처

by 서우

아이의 선언으로 나는 더 이상 아이의 핑계에 동참하며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 무거운 마음을 누르며 담임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과 난처함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 아이들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어보겠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다시 친하게 지내라고 할 수는 없는 문제라서요.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틀린 말이 아니기에, 전화를 기다리며 준비했던 말들을 반도 못한 채 "네, 그렇죠."라고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교실이라는 정글에서 '다시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만큼 무력한 처방전이 또 있을까.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언젠가 남편과 내가 운영하는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딸아이의 학교 분위기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 학교는 유난히 아이들 사이에 견고한 그룹들이 존재하고, 그룹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한다고 했다.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한 낙오자는 1년 내내 투명인간으로 지내야 하는 가혹한 룰이 지배하는 곳. 그곳에서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아이에게 담임 선생님과의 통화 내용을 전하자, 아이는 펄펄 뛰며 오열했다. 그런 말을 왜 했냐고, 선생님이 그 애들을 불러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 아무 소용없을뿐더러 창피하기만 하다고. 나는 나대로 항변했다.


"그러면 엄마가 어떻게 할까, 너를 위해서라면 그 아이들에게 무릎 꿇고 빌 수도 있어."

아이는 차갑게 말했다. "그런 거 다 소용없어."


"엄마도 너만 할 때 그런 적 있었어.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더 좋은 친구도 만나게 되더라."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가 되길 바라며 나의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하지만 딸아이는 단호하게 내 말을 끊었다.

"엄마, 우리는 달라. 학년 초에 결성된 무리에서 배제되면 끝이야. 다른 무리에 들어갈 수도 없어. 그냥 1년 내내 혼자 지내야 해. 난 그걸 견딜 수 없어."


'우리는 다르다'는 그 한마디가 화살처럼 와서 박혔다. 드디어 찾았다고 생각한 둥지 밖으로 내쳐져, 거친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을 아이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나의 경험을 보편으로 생각하며 아이의 고통을 재단하려 했던 나의 무지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아이가 이토록 고립을 두려워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내 딸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남학생들의 지속적인 언어폭력. 그 폭력의 농도가 짙어지던 어느 날, 기어이 사건이 터졌다. 그 아이들은 내 딸을 향해 평소처럼 외모를 비하하는 수준을 넘어, 입에 담기조차 처참한 말을 내뱉었다.


"쟤, 내가 강간해 버릴 거야."


너무나 공개적인 장소와 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증인과 증거는 충분했다. 학폭위가 열렸고 가해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학교와 학폭위, 그리고 주변 친구들까지 모두 피해자인 내 딸의 아픔에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정의가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날카로웠다. 타인의 동정과 위로로도 쉬이 아물지 않는 종류의 자국이었다.


정의의 이름으로 가해자를 벌할 수는 있어도, 그날의 수치심과 공포까지 지워줄 수는 없었다. 아이에게 학교는 더 이상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었다. 언제든 누군가의 비수가 날아올 수 있는 곳, 그리고 한 번 타깃이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곳.


그때 박힌 화살이 뽑히지 않은 채 아이의 등 뒤에서 여전히 곪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왜 몰랐을까. 다시 시작된 여자아이들과의 갈등은 아이에게 단순한 '다툼'이 아니었다. 2년 전 그 지옥 같은 고립으로 자신을 다시 끌고 가려는 거대한 파도였다.



결석과 조퇴를 반복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맞이한 주말.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톤으로, 짐짓 아무 일 없다는 듯 명랑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딸, 엄마랑 데이트할래?"


내색은 안 했지만 아이가 거절할까 봐 내심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의외로 "좋지."라는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행선지도, 무얼 할지도 모두 딸아이가 주도해서 결정했다. 아이가 이끄는 대로 도착한 곳은 활기 넘치는 홍대의 한 수제 향수 공방이었다.


학교의 퀴퀴한 침묵과 대비되는 상큼하고 달콤한 향기들이 공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백 가지 향료 앞에 앉아 고심하여 시향지를 고르는 아이의 얼굴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향을 섞어 수제 향수를 만들었다. 나는 싱그러운 머스크 향을 선택했고, 딸은 부드럽고 달달한 꽃향을 선택했다.

"엄마랑 나는 취향이 정말 다르네. 신기하다." 아이의 얼굴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고, "엄마, 이거 향이 진짜 좋다." 라며 딸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나 귀해서 나는 그날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화장은 20살부터 하라며 절대 허락하지 않았던 내 고집을 내려놓고 올리브영에서 각종 화장품을 사줬고, 세븐틴 굿즈 샵에서는 한정판 앨범을 손에 쥐여주었다.


아이는 원하는 것을 다 얻어 환하게 웃었고, 나는 그 찰나의 평화를 완치의 증거로 믿고 싶었다.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다면, 내일은 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비겁하고도 간절한 기대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아이의 상처를 치료한 게 아니라, 그저 화려한 포장지로 잠시 덮어두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의 가방에서는 새로 만든 수제 향수의 꽃향기가 진동했다. 하지만 일요일 밤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향기는 옅어졌고, 아이의 눈동자는 다시 깊은 늪으로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