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내민 성적표를 거절합니다
출근 준비에 분주한 아침, 학부모님의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아이가 수업 후 바로 영어학원에 가야 하니 반드시 제시간에 마쳐달라는 당부. 어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느라 조금 늦게 귀가시켰던 것에 대한 완곡한 컴플레인이다.
사실 수업은 제시간에 마치는 것이 원칙이다. 받은 원비만큼 가르치고 제때 보내면 그만이다. 학생은 수업시간을 지키며 주어진 숙제를 해오고, 강사는 그에 필요한 피드백을 하며 목표한 진도를 나가면 된다. 각자 제 할 일만 제대로 해온다면, 학원이 학생의 귀한 시간을 더 요구할 필요도, 붙들 이유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원칙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요즘 중학생들에게 국, 영, 수 학원은 거의 기본값이다. 각각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려면 시간 엄수와 숙제 완료는 필수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전체 일정에 과부하가 걸린다. 학원은 구멍 난 부분을 메우려 학생의 시간을 더 가져가려 하고, 정작 기본을 다하지 않은 학생은 인기 스타마냥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 연락을 주신 학부모님도 그런 상황을 잘 아는 분이다. 아이의 지각은 일상이고, 숙제를 잘 안 해오기 일쑤며, 하더라도 벼락치기로 대충 해치운다는 것을 본인도 인정하신다. "선생님, 저는 그냥 외면하고 있어요. 제가 그 꼴을 보기 시작하면 아이랑 싸움만 되고 집안 분위기 험악해지거든요. 학원에서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가슴이 답답해진다. 부모조차 외면한 아이의 무너진 습관과 험악한 분위기를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일주일에 고작 세 번 만나는 내가 어떻게 아이의 오랜 습관을 고칠 수 있을까. 학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명확하지만, 나는 차마 날카롭게 선을 긋지 못하고 대신 '부탁'한다. "저희도 당연히 신경 쓰겠지만, 어머님께서도 기본적인 체크는 꼭 부탁드릴게요." 내 자식도 아닌데,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간절히 부탁하고 있는 건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웃프다.
출석과 숙제. 이런 기본조차 버거운 아이들을 대할 때면 나는 기가 빨린다. 당근과 채찍을 오가며 외줄 타기를 한다. "지각도, 숙제를 안 한 것도 네 잘못이니 나는 정해진 시간만 가르칠 거야."라고 쿨하게 돌아설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면 진도는 거북이걸음이 된다. 느려도 차근차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로맨틱한 말은 초등학교 때까지만 유효하다. 당장 한 학기에 두 번씩 돌아오는 지필평가는 어쩔 것인가. 수학처럼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과목은 하루하루의 축적이 곧 실력이 된다. 아이의 점수가 곧 나의 성적표라 여기며, 어떻게든 그날의 목표량을 채우려 아이를 붙들고 씨름한다.
웃기는 건 점수가 잘 나오면 학생이 잘한 결과고, 점수가 나쁘면 학원 탓이 된다는 점이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내가 전생에 저 아이의 조상이었나 싶어 억울해진다. 고액의 돈을 주고 문항 거래를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타강사의 뉴스를 보면 비현실적이라 느껴진다. 동네의 작은 학원을 운영하며 마주하는 이 서글프고 무거운 책임감이 나의 진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타인의 숙제'를 내 성적표로 받아 든 기분, 사실 처음이 아니다. 신혼 초, 그때도 나는 비슷한 감정의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다. 문득 시어머니께서 내게 던지신 한마디가 생각난다.
"네 신랑 살 좀 찌게 하고, 담배도 좀 끊게 해라. 다 네 하기 나름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남편의 몸무게는 내 내조의 성적표가 되었고, 그의 금연 여부는 내가 말발 서는 아내인지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느껴졌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옷소매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그건 남편의 기호가 아니라 나의 무능함처럼 다가왔다. 나는 평생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만나 결혼했을 뿐인데, 내가 이 사람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왜 내가 이 사람의 습관까지 책임져야 하나 싶어 억울함이 차올랐다.
다행히 남편은 지혜로웠다. 그는 어머니의 요구가 나에게 부당한 숙제가 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주었다. "엄마랑 평생 살아도 안 찌던 살이 이 사람이랑 산다고 갑자기 찌겠어요? 담배도 내 의지 문제지, 이 사람이 뭐라고 한다고 끊겠냐고. 앞으로 며느리한테 이런 말씀하지 마세요."
남편의 방어막 덕분에 시어머니는 다시는 내게 그런 숙제를 내주지 않으셨다. 세월이 흘러 지금 남편은 보기 좋게 살이 붙었고, 스스로 담배도 끊었다. 누군가는 이제야 내가 '만점짜리 아내'가 되었다고 할지 모르겠다. 내심 시어머니께 "우리 며느리 덕분에 아들이 사람 됐다"라는 공치사 한마디를 기대했던 마음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신 어머님을 보며, 서운함이 고개를 들려할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뇌까린다.
'어쩌라고. 그건 남편의 건강이고, 어머님의 마음이지. 내 성적표가 아니야.'
어제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살림 이야기가 나왔다. 밥그릇을 비우던 딸아이가 나를 향해 한마디 툭 던졌다.
"엄마는 30점짜리 주부야."상당히 구체적인 낙제점이다. 하지만 그 숫자를 듣는 순간, 상처는커녕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응, 맞아. 엄마는 전업주부가 되고 싶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 30점이면 딱 적당하네."
이건 진심이다. 나의 여러 정체성 중 '주부'는 때가 되면 가장 먼저 졸업하고 싶은 과목이다. 음식은 전문가가 만든 것을 사 먹는 편이 맛으로나 에너지 효율로나 훨씬 낫다고 믿는다. 청소는 그저 가족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딱 '더럽지 않은 상태'만 유지할 뿐이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해 제 앞가림을 시작하는 날, 나는 이 지긋지긋한 살림 성적표를 영구 반납할 계획이다. 그러니 30점이라는 야박한 점수는 내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다. 애초에 만점을 목표로 한 적이 없으니까.
오늘 아침 학부모의 컴플레인도 이제는 다르게 읽힌다. 그 어머니는 아이와 싸우기 싫어 자신의 숙제를 나에게 떠넘긴 것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엄마가 아니고, 성적이라는 결과만을 오롯이 책임질 수도 없다. 다만 나는 20년을 지켜온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을 뿐이다. 아이들이 수학을 배우며 '매일의 성실함이 쌓여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실력이 된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길 바란다면, 그건 너무 거창한 욕심일까.
마침 오늘 공개된 <흑백요리사 2> 결승전에서 최강록 셰프가 마지막 접시를 앞에 두고 건넨 뜻밖의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오랫동안 '척'하며 무리해 왔던 시간을 뒤로하고,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운 요리로 자신을 위로하고 싶다는 그의 말. 나 역시 프로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야 한다며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건 아닐까.
이제 타인이 내미는 성적표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한다. 모든 평가는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기꺼이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나로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쌓아갈 것이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반드시 나를 위해 복무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