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늦게 시작된 우리의 1일

2026년 1월 11일

by 서우

일요일 늦은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우리 부부는 함께 볼 프로그램을 고르느라 분주히 리모컨을 눌러댔다. "엄마, 이거 우리 미술 선생님이 재밌다고 추천하더라. 진짜 재밌대." 딸아이의 추천에 못 이기는 척,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재생했다. 남의 연애사에 뭐가 그리 볼 게 있나 싶었지만, 오늘따라 왠지 모를 호기심이 마음을 건드렸다.


시청을 시작한 지 채 20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왜 사람들이 그토록 이 화면에 열광하는지 깨달았다. 낯선 제주도의 펜션, 일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그 안에는 설렘과 질투, 환희와 실망 같은 연애의 온갖 희로애락이 밀도 높게 압축되어 있었다. 화면 속 젊은 남녀들의 서툰 감정들을 지켜보던 내 마음은 어느새 20여 년 전 우리의 '1일'이었던 그 뜨거웠던 여름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건너가고 있었다.




사실 2007년의 나는 조금 망가져 있었다. 직전 연애의 끝은 너덜너덜한 상처만 남겼고, 나는 그 마음을 추스를 길을 몰라 스스로를 혹사하는 쪽을 택했다. 원장이 맡기는 수업이라면 군말 없이 다 받아냈고, 시험기간에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강의실을 지켰다. 몸이 부서질 듯 피곤하면 마음의 소리도 잠잠해질 거라 믿으며, 어리석게도 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다.


그 무렵 일터에서 만난 윤미 선생님은 내 지친 일상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동향 출신의 국어 강사였던 그녀와는 말이 참 잘 통했다.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이별의 잔해들까지 쏟아내게 되었다. "내가 진짜 좋은 사람 소개해줄게요. 나만 믿어봐요." 호언장담하는 그녀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덜컥 잡은 것이 바로 그날의 약속이었다.


당시 소개팅 시장의 유행은 특이하게도 '선 통화 후 만남'이었다. 얼굴을 보기 전 목소리로 먼저 서로를 탐색하는 기묘한 방식. 의외로 내 적성에 맞았는지, 나는 얼굴도 모르는 한 남자와 밤마다 꼬박 일주일간 전화를 붙들고 살았다. 낮에는 지독한 수업의 굴레에 갇혀 있다가도, 밤이 되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비로소 활기를 되찾았다.


퇴근길 무협지를 빌려 읽고,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며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의 소박한 일상은 내 고단한 삶과 대조되어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6남매 중 막내 특유의 살가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얼굴을 그리며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아물려 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목소리로만 쌓아 올린 기대감을 안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7월의 홍대, 평소 같으면 길을 헤맬까 봐 겁부터 났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생전 안 하던 짓까지 했다. 소개팅 때문에 미용실 예약까지 잡아 머리를 세팅한 것이다. 다이어트는 처참히 실패했지만, 머리발과 화장발이라는 든든한 아군이 있으니 이 정도 투자는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7월의 태양은 내 비장한 각오를 비웃듯 뜨거웠다. 지하철역을 나서자마자 습한 열기가 훅 끼쳐 왔고, 정성스레 세팅한 머리칼은 서서히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해 처지기 시작했다.


'사거리에서 우회전, 그리고 두 번째 골목...'

머릿속으로 약도를 그렸지만, 홍대의 복잡한 골목은 길치인 나에게 거대한 미로였다. 당황할수록 땀방울이 인중을 타고 흘렀고, 거울을 보지 않아도 화장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약속 시간은 이미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쌤, 아직 도착 안 한 거예요? 상대방 원장님 많이 기다리시겠다. 빨리 전화해 봐요!"

"안 돼요. 창피하단 말이야. 그냥 내가 더 찾아볼게요."


주선자인 윤미쌤의 독촉 전화에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았다. 1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완전히 방향 감각을 잃고 낯선 건물 앞에 멈춰 서고 말았다. 그냥 모든 연락을 끊어버리고 도망가 버릴까 싶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그 사람이었다.


"여보세요..."

"어디쯤이세요? 근처에 뭐가 보여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당황해서 떨리는 내 목소리와 달리 그의 음성은 차분하고 다정했다. 근처에 보이는 커다란 상가 이름을 말하자, 그는 이렇게 나를 안심시켰다.

"아,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전화 끊지 말고 거기 그대로 있어요."


너무 창피하고 미안해서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아무리 길치라지만 이런 날까지 정신을 못 차리나. 나는 왜 이럴까.' 스스로가 한심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순간, 번잡한 인파 사이로 어떤 시선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고개를 들자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보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일주일 내내 내 잠을 훔쳐갔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주선자의 말대로 적당한 키에 마른 체격, 그리고 무엇보다 부리부리한 눈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땀범벅이 되어 엉망이 된 내 몰골을 확인하더니, 못 참겠다는 듯 입가에 묘한 미소를 뗬다. '드디어 찾았다'는 안도감과 '이 여자, 정말 대단한 길치구나' 하는 장난기가 섞인 표정. 그 수치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설레던 공기가 우리 사이를 메웠다. 땀에 젖어 엉망이 된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던 그 무더운 오후, 우리의 1일은 그렇게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되었다.




TV화면 속 출연자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설레는 장면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져 전남친이자 현남편인 그에게 물었다.

"오빠, 그날 오빠가 계속 연락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

"글쎄, 기억 안 나는데."

"나도 정확히는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애매모호하게 대답했을 거야. 그러니 오빠가 2차에 비싼 와인 사고, 3차에 내가 좋아하는 맥주까지 먹여가며 나를 안 보내줬지. 내가 '예스'라고 할 때까지 말이야. 맞지? 그날 도대체 얼마를 쓴 거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던 그때, 나는 비로소 기분 좋게 튕길 수 있었다. 지난 연애의 상처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내 자존심을 세워준 건, 다름 아닌 나를 향한 그의 뜨거운 진심이었다.


남편이 말없이 내 손을 꼭 잡는다. 그의 표정을 보니 그도 잠시 그때의 홍대 거리로 돌아가 있는 듯하다.


그날 이후 1년 반의 열애 끝에 내 생일날 결혼식을 올렸고,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 걷고 있다. 생각해 보면 길을 잃는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픈 이별에 갈 길을 못 찾고 헤맨 덕분에 평생의 동반자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가끔 길을 잃는 나를 기어이 찾아내 함께 걸어주는 이 남자. 덕분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다. 어느 골목에 서 있든, 내 손을 잡은 이 온기가 나를 가장 안전한 집으로 데려다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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