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9일
오늘 내 통장은 아주 가벼워졌고, 딸아이의 스케줄표는 아주 무거워졌다. 미술학원 겨울특강 결제 금액을 보는 순간, 잠시 숨을 참았다. 나도 학원 밥 먹고 사는 원장인데, 수업시간이 2배가 되면 수강료도 2배가 되는 건 당연히 안다. 하지만 막상 내 지갑이 털리는 입장이 되니 쓰라린 건 어쩔 수 없다. 2시부터 10시까지, 꼬박 8시간 동안 밥 먹고 그림만 그리겠다는 딸의 선포에 내 지갑이 강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너 정말 괜찮겠어? 8시간이면 엉덩이에 종기 날지도 몰라."
"걱정 마, 엄마. 힘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 나 진짜 해보고 싶어."
세상에. 사춘기 이후로 "알아서 할게" 아니면 "몰라"만 반복하던 녀석의 입에서 '재미'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다니. 그 초롱초롱한 눈빛에 홀려 기꺼이 카드를 내주었다. 그래, 네가 그토록 간절하다면 이 엄마가 기꺼이 네 꿈의 스폰서가 되어주마. 하지만 결제 완료 문자가 울리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파도가 밀려왔다.
문득 나의 열일곱 살이 소환되었다. 봄볕 같은 시를 쓰고 싶었고, 누군가의 이어폰 속을 흐르는 노랫말을 적고 싶었던 그때. 내 부모는 내게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할 용기가 내게 없었다. 만약 내가 "엄마, 나 시인이 되고 싶어."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얘가 별 시답지 않은 소리 다 하네. 들어가서 공부나 해라."라는 핀잔이 날아왔겠지. 조명 한 번 받지 못한 나의 꿈은 골방에서 먼지처럼 사그라들었다. 어설픈 재능은 인생을 망친다며, 공부가 제일 쉬운 길이라고 세뇌당하며 살았던 시간들.
이제는 안다. 인생을 망치는 건 잘못된 선택이지, 꿈은 아무 잘못이 없다. 오히려 꿈은 생을 버티게 하는 연료다. 연료가 없으니 내 인생의 엔진은 그토록 자주 덜컹거렸던 게 아닐까.
사실 이 깨달음은 딸이 온몸으로 내지른 비명 끝에 얻은 아픈 전리품이다. 나 또한 '원장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자영업자로서 생존이 벅차다는 핑계로 딸의 마음을 방치했다. 어느 밤, 남편을 붙잡고 면죄부를 구하듯 울며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우리가 식당을 했으면 식당 일을 거들었겠지. 학원을 하니 공부도 하고, 이 정도면 정서적으로 안전한 거 아니야? 나 더 이상 죄책감 안 가질래." 그건 아이를 위한 보호가 아니라 나를 위한 비겁한 합리화였다.
그 시절, 돈이 없어 못 해준 게 많다고 자책하며 아파했지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일. 나는 돈이 없어서 가난했던 게 아니라, 마음이 지독한 가난뱅이였던 것이다.
아이에게 학원 벽은 얼마나 답답한 감옥이었을까. "수학 선생 딸이니 수학 잘하겠네."라는 타인들의 기대는 아이의 발목에 채워진 무거운 모래주머니였을 테다. 늘 다른 아이들에게 엄마를 빼앗긴 채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아이. 삐뚤삐뚤 써 내려간 아이의 편지 속엔 늘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왜 네가 미안하다고 했을까.
작년에 겪은 아이의 등교거부와 우울증이라는 비명은 마침내 나를 깨웠다.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지금 당장 아이의 마음에 온기를 채워줘야 한다고. 공부 안 해도 좋으니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걸 찾아보자고 아이를 이끌었을 때, 아이는 이미 제 안의 꿈을 꼭 쥐고 있었다.
그 꿈에 조명을 비춰주니 비로소 아이가 일어섰다. 무기력하던 눈에 생기가 돌고, 제 꿈을 위해 하기 싫은 공부까지 스스로 챙기기 시작했다. 미술 학원 선생님의 말처럼, 재능보다 중요한 건 '좋아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내 꿈이 그때 제대로 길러졌다면, 지금쯤 나는 '시 쓰는 수학강사'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본 예능 프로그램 속 아나운서 작사가처럼 말이다. 이질적인 두 세계가 만날 때 생기는 그 묘한 창의성이 사무치게 부럽다.
밤 10시. 8시간 동안 캔버스와 뜨겁게 마주하고 돌아온 아이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낯선 미술 용어들을 쏟아내는 아이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엔진이 기분 좋게 풀가동되고 있다는 것.
아이의 수다를 배경음악 삼아 생각했다. 저렇게 말이 많을 걸 보니 엉덩이에 종기 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다만 내 통장에 종기가 났을 뿐이다. 엔진이 풀가동된 아이는 밤늦게까지 스케치북을 뒤적이고, 나는 그 옆에서 '시 쓰는 수학 강사'의 꿈을 꾼다. 일단 시를 쓰려면 영감이 필요한데, 오늘 가장 큰 영감은 역시 영수증에 찍힌 숫자들이다. 내일은 이 '숫자의 슬픔'을 '문장의 기쁨'으로 바꿔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