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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의 질문들

2025/01/20

by Stellar

이사 와서 처음 찾아온 무기력의 날. 생각해 보니 약 먹는 걸 깜빡했는데 무기력해서 생각이 났을 때도 챙겨 먹지 않았다. 그냥 '휴식이 필요했던가 봐.' 하고 하루 푹 쉬어줬다.


십 년의 시간이 흘러도 미제로 남아 돌아오는 질문들이 있다. 질문의 대상이 없으니 대답이 있을 수 없어 잊히지 않는 한 계속 돌아올 질문들이다. 일어난 일들을 눈이 본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진 것이 제일 문제다. 함의가 무엇인지 따지다 보면 오히려 본질을 놓치게 되고 오래된 장면과 문장들은 시간의 강을 건너며 왜곡되면서 사건은 믿음의 세계로 떠나가 버린다. 그곳에서 찰흙놀이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나 감정을 덧붙였다 떼었다 하며 그나마 두고 보기 괜찮은 모양으로 만들어간다. 한동안 그럭저럭 괜찮은 형태의 기억을 데리고 살지만 어쩌다 감정이 엉키는 날이 오면 그 모습도 꼴 보기 싫어져 내던져 버린다. 영영 굳지 않는 무른 덩어리는 마음의 벽 이곳저곳에 진흙을 묻히고 구석에 떨어져 뭉개진 채로 다시 질문을 던지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오늘도 잠시 해가 비치는가 하더니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영국에 정말 꽃이 피는 봄이 있기는 한지 궁금할 정도다. 가벼운 복장으로 긴 오후의 햇살이 만든 그림자 사이사이를 옮겨 다니며 걷는 여름의 일상을 기다리는 나날들. 어차피 겨울에 오기로 결정했으니 런던에서 맞을 연말연시를 낭만이라 여기기로 했지만 내가 쓸쓸한 흐린 날들을 좋아한 것은 오로지 밝고 맑은 날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내 몸은 찬기가 너무 쉽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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