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남녀>를 보고 떠오른 영화, <젖꼭지 3차 대전>
2022.04.28. 개봉 /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은 살짝 긴 121분 / 씨네소파 배급
바쁜 회사일로 연애는 못하고 기막힌 아이디어는 까이기 일수 승진은 남의 이야기 열정만렙 33살 만년대리! 우리의 영블리 영진 어느 날, 능력은 없지만 빽은 있는 낙하산 준설이 그녀 앞에 떨어지고 하루도 평평할 날 없는 영진의 고달픈 일상이 시작되는데… 일도 사랑도 꼬여버린 할많하않 오피스 브이로그가 온다!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은 가벼운 24분
방송국 피디인 용은 노브라 연예인의 젖꼭지가 나온 방송 화면에 모자이크를 하라는 부장의 명령을 받는다.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직장인이 되고 나서 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생겼다. 회사원 V-log다. 퇴근 후 다시 직장으로 출근한 기분이 들어서다. 만년 대리의 영진 씨의 삶이 담긴 <평평남녀>도 회사원의 삶과 너무 밀접해서 극과 나의 거리감을 잃고 괴로워질까 걱정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우다.
회의 시간에 제2의 자아에게 지배당한 듯 영혼 없는 눈으로 필요한 말만 빠르게 뱉어내는 모습이나 부장님 기분에 맞춰 열린 점심 회식에서 상사 비위 한 번 맞춰주지 않고 허겁지겁 밥만 먹는 영진 씨의 모습은 나와 다르지 않다. 영진 씨처럼 고군분투하는 또 다른 직장인 이야기가 떠오른 건 그래서일까. <젖꼭지 3차 대전>에 등장하는 다툼은 여성 연예인의 젖꼭지(실루엣)를 모자이크하지 않으려는 용 PD와 모자이크 해야 한다는 예능 본부장의 싸움이다.
실력 있는 영진 씨가 만년 대리인 이유도 낙하산 과장에게 밀린 것도 엄밀히 말하면 그가 여성이라서다. 옷에 덮인 실루엣임에도, SNS에 겨우 텍스트로 등장하는데도 용 PD가 젖꼭지에 모자이크를 쳐야 하는 이유 역시 그 젖꼭지가 여성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이 정말 평평할까?
평평한 비탈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영진 씨와 용 PD를 보고 있는데 오히려 유쾌하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서일까? 그렇지 않다. 이유는 하나다. 그들은 미끄러질지언정 조용하지 않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고 달려들고 비탈을 기어오른다. 어차피 미끄러질 거라면 그래, 요란하기라도 할 테다. 그 요란함이 누군가에게는 응원이 되고 또 다른 용기가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