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사용하는 ‘비판’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비난이나 공격의 의미가 아니다. 내가 마주한 현상에 대해 “왜 이런가?”, “이것이 최선인가?”, “더 나은 방식은 없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사유해 보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보다 적확한 정의가 존재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이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간다.
‘모순적 실존 착시현상’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비판적 사유의 결과로 탄생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모순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구체적인 현상과 관념의 형태로 실존한다. 그러나 그중에는 ‘굳이 실존하지 않아도 될 것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들을 해체하고, 가려진 실체를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 옳은가를 반복적으로 되묻는 태도는 필수적이다.
이 개념을 떠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스스로를 ‘부족한 인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에 입학했으며, 군 복무도 늦게 마쳤다. 이처럼 통념 속 ‘정상 경로’에서 벗어난 삶은 나에게 다양한 관점을 제공했다. 만족 속에서는 얻을 수 없었을 생각의 선물들이었다.
육체적, 외모적, 경제적, 사회적 우월감은 사람을 지금의 삶에 정착시키는 힘이 있다. 그 상태는 종종 시야를 제한한다. 반대로,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은 평소에는 인식하기 어려운 것들을 보게 만든다. 물론 그 과정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삶의 부정적 감정들 속에서 시야는 자주 흐려졌다.
그러나 나는 가능한 한 낙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고자 했다. 자기 자신을 위로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려는 노력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북돋기도 하고 단련시키기도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했다. 이 모든 일은 의식과 무의식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였다.
나는 종종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이 시련을 이겨내면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때로는 내가 스스로 시련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마음가짐은 나를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다.
지금의 나는, 나의 철학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더 많은 비판 속에 나를 노출시키고자 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흡수하듯 받아들이며 철학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그 과정은 시련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시련이자 동시에 시련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문장의 끝에서 “아, 이 말이 그런 뜻이었구나”라는 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다룰 ‘모순적 실존 착시현상’은 나에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들이었다. 독자들도 이 과정을 함께 비판하며 즐겨주길 바란다.
이 글은 개념을 정리해 낸 과정 자체를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따라서 초반에는 다소 낯설고 모호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명확히 알고자 하는 태도도 좋지만, 때로는 느리게 이해하는 경험도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