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가난과 부유함

by Kn

1-1. 가난과 부유함


인간은 태생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어떤 이는 가난하게, 어떤 이는 부유하게 태어난다. 중산층이라 불리는 계층도 본문에서는 부유층으로 간주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성장하게 된다. 자연히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삶을 비교하게 되며, 그 비교는 부모까지 대상으로 삼는다. 이 지점에서 ‘모순적 실존 착시현상’이 발생한다. 비교는 현실을 왜곡하며,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부정적 관념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누구도 타인의 가난을 비하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 역시 지양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구조적으로 필연적이다. 모두가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없고, 모두가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없다. 개인의 능력만으로 모든 결과를 설명할 수 없으며, 운과 사회적 구조 역시 작용한다.

따라서 가난을 맞닥뜨렸을 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열등감, 자괴감, 질투 등의 감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긍정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직업 중 다수가 낮은 보수를 받는다. 그러나 보수가 낮다는 이유로 그 일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잘못이다.

과거 나 역시 자신을 폄하한 경험이 있다. 이로 인해 극심한 자괴감에 빠졌고, 삶에 대한 태도 역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런 왜곡된 사고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물질주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그 가치를 내면화한 결과다.

삶의 조건과 내가 수행하는 일을 동일시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나는 나일뿐이고,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혹은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한 번은 어떤 부모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난해서 자식들을 풍족하게 해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이해할 수 있으나 동시에 많은 위험을 내포한다. 부모가 스스로를 비하하게 되면, 그 관점은 자식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그 결과 자식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넌 나처럼 살아선 안 된다. 성공해야만 행복할 수 있고, 당당해질 수 있다.”


이런 말은 자식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을 제한한다. 자식은 공부를 못할 수도 있다. 모두가 명문대에 갈 수는 없다. 부모는 자신의 경험을 자식에게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 자식은 부모와는 다른 하나의 인격체다. 부모는 자식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여야 한다.

비판적 사고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나쁜 것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것을 비판하는 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비판은 존중이나 사랑과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공존할 수 있다. 부모에 대한 비판이 허용될 때, 자식은 비로소 주체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다음은 자식의 관점이다. 부모의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당당해져야 할 이유이며,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타인과 삶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나는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극단적 결심이다.

가난이 불행의 원인은 아니다. 불행은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비교로 인해 형성된 관념에서 비롯된다. 자괴감, 시기, 질투 등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이들의 지속적인 생성과 확대는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자면, 가난을 마주한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괴감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식이 해야 할 세 번째는 ‘배려와 존중의 가치를 지닌 주체적인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공부, 아르바이트, 취업 등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지만, ‘혜답(지혜로운 답)’은 존재한다. 그 답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며,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는 바로 ‘나’다.

실패는 당연한 과정이다. 실패 없는 삶은 없다. 자신을 함부로 폄하하지 말고, 동시에 자신의 역량을 직시해야 한다. 기대만으로 자신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잣대는 오히려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구조다.

자신을 한계 짓지 마라. 나와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시작이 될 수 있다. 나의 가치는 비교 속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난’과 ‘부유’는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를 폄하하는 일은 실제로 흔히 일어나며, 이 현상이야말로 착시이다. 그 착시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가족에게도 그 시선을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가난이 나를 다시 찾아온다면, 착시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이 나를 부정적으로 만든다면, 그 현실의 강제를 극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다.

또한, 사회는 구조적으로 가난과 부유의 차이를 조장한다. 매체는 부유함을 이상향처럼 포장하며 사람들을 비교로 이끈다. 그러나 과거 조상들은 나눔과 절제를 삶의 중심으로 삼았다. 지금 우리는 그 정신을 잃고 있다.

돈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는 수많은 오판을 유도한다. 수치로 나타나는 업무 능력이나 시험 성적은 효율성을 위한 기준일 뿐, 인간의 본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예컨대, 능력은 있지만 배려심이 없는 구성원은 조직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수치는 그 사람의 진짜 영향력을 완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따라서 판단은 신중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잘 사는 사람은 단지 잘 사는 사람일 뿐이고, 못 사는 사람은 단지 못 사는 사람일 뿐이다. 그 외에 어떤 가치도 덧붙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잘 산다’는 표현조차 본질적으로 잘못된 말일 수 있다.

타인을 짧은 시간 안에 평가하려 드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오랜 시간을 두고, 존재 자체를 바라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이미 그렇게 깊이 바라본 존재일 수 있다.

자신의 존재를 함부로 축소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 기록된 위인들은 인간일 뿐이며,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기준이 아니다. 그들처럼 나 또한 나만의 방식으로 가치를 지닌 인간이다.

가치는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키우는 것이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성장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실현해야 할 방향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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