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천재와 범인(凡人)

by Kn

‘천재’, ‘특수아’, ‘범인’ 등의 개념은 실존하는 능력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이 구분은 개인의 주체성을 훼손할 수 있는 모순적 실존 착시현상을 유발한다.

사회는 특정 능력을 기준으로 인간을 범주화하며, 이에 따라 ‘나는 평범하다’, ‘나는 못 미친다’는 자기 낙인을 형성하게 된다. 천재라 불리는 존재는 그 자체로 사회적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받기 쉬우나, 그것을 바라보는 범인의 시선은 자괴감, 무력감, 시기, 불평등의 감각을 동반한다.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끌어내리는 이러한 과정은 개인의 자아를 왜곡시킨다. 목표를 높게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으나, 무리한 동일시는 실패 시 자기부정으로 이어지기 쉽다. 높은 목표는 동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율성의 위협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성장을 방해한다. 자기 한계를 무시한 채 누군가의 삶을 이상화하고 그대로 모방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내면의 고립과 자기 상실로 귀결된다. 겉으로는 이상적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결박하는 사고방식이 될 수 있다.

삶의 출발점은 ‘나’다. 성공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잊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목표를 이룰 수 있으며, 누구나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는 패배가 아니며, 도피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우리는 흔히 마라톤에서 1등에게만 주목하지만, 결승선을 통과한 모든 이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이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실패와 고군분투를 존중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도전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실패는 그 가능성 안에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반복된 실패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인간은 쉽게 지치며, 끊임없는 도전을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단순히 ‘끈기 없음’으로 치부하는 것은 무책임한 판단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좌절한다. 그 안에서 새로운 긍정의 가능성을 찾고 재도전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보편적 과정이다. 성공과 실패로 사람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며, 자기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소외시키는 방식이다.

천재는 존재한다. 범인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구분이 개인의 행복과 불행, 존엄과 열등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경우, 열등감은 외부가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열등감은 비교와 착시에서 만들어진다.

“천재와 범인은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없다.” 이 말은 곧, 그러한 구분이 사회적 인식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타인과 사회가 만들어낸 구분은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받아들임으로써 고착화된다.

사회가 변화하려면 개인이 변화해야 한다. 내가 바뀌면 타인이 바뀌고, 타인이 바뀌면 사회의 관념도 변화할 수 있다. 긍정적인 방향이 될지 부정적인 방향이 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직관적인 인상이나 결과로 판단한다. ‘천재’라면 대단할 것이고, ‘평범’하다면 모자랄 것이라는 전제는 위험하다. 이런 판단은 오히려 진짜 실패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존재 자체보다 사회적 라벨이 앞서게 되면, 개인은 스스로를 제한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극복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과 회복력을 갖고 있다.

실패를 어떻게 볼 것인가. 실패는 실패인가, 아니면 그저 삶의 일부인가. 실패를 통해 새로운 성공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는가. 여기서 선택은 개인에게 달려 있다.

실패라는 이름은 단지 과정을 부정적으로 규정한 명칭일 수 있다. 그것을 두려움이나 수치심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의 경험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실패와 성공은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동시에 가까운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천재든 범인이든, 결국 인간은 실패할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그 실패를 맞이했을 때 자기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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