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하다’는 표현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된다. 특정 개인이 두드러진 능력을 보일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탁월한 사람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개념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며 모호한 기준 위에 놓여 있다. 누군가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 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또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질투, 시기, 냉소, 비웃음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저 정도로 칭찬받을 일인가?”와 같은 반응은 능력 있는 이들이 내면적으로 겪는 전형적인 정서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감정 구조다. 일찍부터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칭찬’이나 ‘차별적 긍정’을 자주 경험한 사람은 그것에 익숙해지기 쉽다. 그 감정은 자기 인식의 일부로 내면화되며, 자존감 혹은 자기중심성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이러한 감정이 옳은가’, 그리고 ‘그 감정이 나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지는 않는가’라는 성찰적 질문이 부재할 때, 탁월함은 오히려 개인적 착시와 관계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부유함이나 지위, 외모 우월감과 같은 영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감정 구조는 종종 나르시시즘(narcissism)과 연결된다. 대부분의 인간은 방어기제로서 일정 수준의 자기애를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이 타인을 향한 배려와 존중의 결여로 이어질 경우, 그 자체로 도덕적, 관계적 결함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자기 우월감이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이는 사회적 문제로 확장될 여지를 가진다.
탁월함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기능적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탁월하다는 개념을 칭송의 언어로 고정시켜 놓는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착시 중 하나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인식이 곧 존재의 정당성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서와 인식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인가? 이에 대한 확답은 어렵다. 사회적 조건, 문화적 학습, 성격 구조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상대를 향한 존중과 배려가 결여된 탁월함은 그 자체로 자기 파괴적일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오히려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일부 개인은 "나는 배려나 존중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자기합리화 또는 탈도덕적 선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타인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다. 다만, 그러한 입장을 지닌 개인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무엇을 행복이라 느끼는지, 또는 왜 불행해졌는지는 연구자적 관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논의는 존재의 태도와 연결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배려받고, 존중받기를 원하는 존재인가? 혹은 그러한 욕구마저 벗어난 자율적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여전히 유보되어 있다.
이번 글은 부유함과 가난의 착시현상과도 개념적으로 긴밀히 연결된다. 탁월함과 부유함은 모두 상대적 위계 구조 안에서 인식되는 가치 판단이며, 둘 모두 정체성의 혼란과 관계의 왜곡을 유발할 수 있다. 두 주제를 함께 비교하며 음미하는 것은 본 개념의 심화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