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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Oct 11. 2024

친구를 만들어볼까 했는데

소화가 안 돼 포기하겠습니다. 


10월 9일 한글날, 태극기를 거꾸로 게양한 아들 녀석에게 꿀밤 선물을 날려주었다. 아들은 아침부터 신이 났다. 친구 가족 따라 유등축제에 놀러 갈 기회가 생겼다. 항상 동생을 놀리던 딸은 네가 친구가 있었냐며 비아냥거린다. 그렇게 아들은 1시에 집을 나가서 드론쇼까지 보고 장난감까지 쇼핑한 후 밤 9시 30분에 귀가했다. 


남편은 일하러 갔고, 나도 하루 종일 집콕하긴 억울했으므로 딸을 꼬셨다.  

“딸, 네 친구 ㅇㅇ이 시간 있나 물어봐라. 엄마가 짬뽕 사줄게. 아주 맛집을 알아놨거든”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고 한참 답장을 기다리던 딸이 안된다고 했다. 

“엄마, ㅇㅇ이 오늘 외할머니 집 간대.”

 휴일에 집밥은 반칙이므로 나는 안 가겠다는 딸을 겨우 구워삶아 결국 집 밖으로 탈출했다. 짬뽕집에 가서 짬뽕과 짜장면을 시켜 배불리 먹었다. 나는 딸에게 신세 한탄을 했다. 

“에구, 우리가 만날 친구 없다 놀리던 **(동생)이는 친구 따라 유등 축제 놀러 가고, 휴일에 놀 친구도 없어서 시간 때우는 모녀라니 우리 신세가 아주 처량하구먼.”

“어어, 엄마랑 난 동급이 아니야, 난 친구 많아. 그냥 오늘 놀 친구가 없을 뿐이라고!!”      


밥을 먹고 배가 너무 불러서 근처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갔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연못에 백로마저, 뭐야 다 끼리끼리 모여 다니네. 오늘은 기분이 꿀꿀하니까 안 가던 길을 개척해 보기로 했다. 작년까지 공사를 하더니만 군데군데 아이들 놀이터며 각종 꽃과 나무들까지 아주 멋지게 꾸며놓았다. 위까지 쭉 올라가니 등산로랑 이어져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내려오는 길에 이상한 풍경을 발견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5명이 일렬로 서서 질풍가도 노래를 틀어놓고 이상한 춤을 추고 있었다. 딸의 설명에 따르면 이게 인근 중학교 치어리딩 수행평가란다.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힐끗힐끗 쳐다봤는데 애들 5명이 동시와 나와 눈이 마주쳤고,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돌렸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가는 척 돌아보고 가는 척 돌아보고 2-3번 더 그랬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나의 만행을 옆에서 지켜보던 딸은 미친 거 아니냐며 엄마가 왜 돌아이 소리를 듣는지 알겠다고 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니?)     


공원을 반쯤 돌고 내려오는데 딸에게 카톡이 왔다. 아까 외할머니집에 갔다는 그 아이말이다. 

“엄마, 00이 엄마가 금요일에 밥 산다고 엄마, 나, 친구, 친구엄마 이렇게 밥 먹자는데, 시간 돼?”

“아니? 그 엄마가 왜 갑자기 나한테 밥을 산대? 네 친구가 나 이상한 거 벌써 눈치챘나?”

“여름에 물놀이도 데려가 주고, 학원 갈 때 태워주고, 암튼 고마워서 밥 사고 싶으시대.”     


아, 순간 고민이 되었다. 그 친구 엄마하고는 1년 전 그림대회에서 잠깐 스친 게 다다. 그리고 나는 낯을 많이 가려서,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진짜 진짜 불편하다. 그래도 딸이 좋아하는 친구 엄마니까 거절하기도 그랬다. 딸은 식사 장면을 상상해 보더니 상견례도 아니고 4명이 앉아서 식사하면 엄청 어색할 것 같다 했다. 그래도 가고 싶은 눈치였다.      


금요일 7시 10분 약속은 정해졌고, 식당도 그쪽에서 알려주었다. 퇴근하고 집에서 조금 쉬다 수학 학원을 마친 딸을 픽업해서 식당에 갔다. 딸은 크림파스타를 시키고 나는 돈가스를 시켰다. 퇴근하고 약밥을 1개 먹은 게 화근이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남이 사주는 밥인데 너무 많이 남기면 예의가 아닐까 봐 다른 날보다 과식해서 꾸역꾸역 먹었다. 친구 엄마도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셨고, 애들 이야기랑 유등 축제 이야기하다가 흐름이 끊겼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고향에서 택시사업을 하시다가 최근에 정리를 했다고 했다. 나와 동향이셨고 그러다가 나이를 물어보셨는데 내 나이를 알고는 놀라는 눈치였다. 우리 딸이 이야기하길 자기 반에서 나보다 젊은 엄마는 없다고 했다.      


다행히 2차는 안 갔고 ‘다음에는 제가 밥 살게요’ 인사를 남기고 우리는 헤어졌다. 집에 오니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다. 소화제 몇 알을 털어 먹고 쉬었다. 얼마 후 속이 울렁거려 화장실에 가서 토를 했다. 딸이 친구 엄마랑 친구 먹으라고 했는데 그놈의 친구 한 번 만들어 보겠다고 불편한 식사를 했더니 탈이 났다. ‘다음에는 제가 밥 살게요.’ 이 약속을 나는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외톨이 생활을 유지해 오다 별안간 친구를 만들려니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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