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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Oct 19. 2024

현실 부부는 이런 일로도 싸웁니다.

이게 다 옥수수 때문이다. 

몇 주 전일입니다. 10월 3일 개천절이었지요. 오전에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의령에 잠깐 들렀지요. 리치리치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는데 아들의 성화에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1시까지 친구들 만나서 놀기로 했다며 엄청 보챘지요.) 급하게 피자로 점심을 때운 후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요. 아들을 집 앞에 내려주고도 시간이 많이 남았기엔 남편과 저는 가을을 즐기러 합천 신소양체육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신소양체육공원은 핑크뮬리 맛집으로 벌써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당일 날씨가 조금 흐렸지만 공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습니다. 주차를 하고 남편과 걸었습니다. 입구에는 푸드트럭이 몇 대 있었는데 주전부리를 즐기는 남편은 또 돈을 꺼내 옥수수를 샀습니다. 검은 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가는 남편이 너무나 웃겼습니다.      


먼저 우리를 반겨 준 것은 황화 코스모스였습니다. 꽃 반 사람 반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중간에 누가 꽃밭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호루라기 아저씨들이 호루라기를 불어대곤 했습니다. 셀카봉을 준비해가지 못해서 남편과 저는 서로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날씨 탓이기보다는 모델 탓입니다. 조금 더 가니 달팽이 모양의 핑크뮬리 군락지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오늘 저의 의상이 NG라고 했습니다. 왜 원피스를 입지 않았냐고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의상이 문제가 아니라 얼굴이 문제라고 그냥 자폭했습니다.      


개울에 있는 작은 돌다리도 건너고 거의 2시간 가까이 꽃구경을 하며 산책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70대로 보이는 노부부를 만났는데 그 두 분이 아주 사진에 진심이셨습니다. 할머니는 대단한 멋쟁이셨고, 모자까지 준비해서 오셨더라고요. 할아버지가 계속 사진을 찍어주는데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찍으라고 역정을 내셨지요. 할아버지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나란히 의자에 앉아서 커플 사진을 찍는데 포즈도 다양하게 바꿔가며 아주 열정적으로 사진을 남기셨죠. 우리도 그 똑같은 자리에서 커플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은 지나가던 분께 부탁해서 찍었어요. 오늘 찍은 사진이 한 300장은 될 듯싶은데 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산책하는 동안 옥수수는 다 먹었습니다. 물론 저도 조금 얻어먹었습니다. 남편의 옥수수 사랑은 못 말립니다. 주차장 근처에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제가 먼저 자리를 떴죠. 그 사이 남편도 화장실에 다녀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남편 손에 들려있던 옥수수(다 먹었으니까 옥수숫대) 봉지가 없어졌습니다. 

“여보, 검은 봉지 어떻게 했어?”

“저기 화장실 앞에 쓰레기봉투 보이지 거기에 버렸어.”

“아니, 그걸 왜 거기 버려, 저기는 딱 봐도 화장실 쓰레기 모으는 봉투 같은데. 집에 가서 버리면 되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꼭지가 돌아버렸습니다. 일단 목소리가 커지기 전에 차부터 탔습니다. 

“아니 저 쓰레기봉투가 화장실 쓰레기 모으는 봉지인 줄 네가 어떻게 알아? 저기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문구라도 적어놨어? 왜 사람을 범죄자 취급해”

“자기가 먹은 쓰레기는 집에 가서 버리는 게 기본이야. 누가 범죄자래. 집에 가서 버리면 되는데 왜 저기 버렸냐고 그 말이지.”     


엎치락뒤치락 말싸움을 벌이던 남편은 저 보고 차에서 내리라고 협박을 합니다. 예? 여기서 우리 집까지 택시비가 얼만데? 사과하라고 본인에게 사과하라고 해서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지 남편은 본인 화를 분출하듯 시속 160km를 밟아버립니다. 단속카메라 있다고 속도 줄이라고 뭐라 하니 알고 있다고 입 다물라 합니다. 둘 다 기분이 엄청 상해버렸습니다. 연애할 때는 정말 모든 것을 포용해 줄 것처럼 하더니 요즘에는 사사건건 말꼬투리 잡아서 사람 진을 빼놓습니다. 더럽고 치사해서 당분간 같이 놀러 안 가렵니다.      


공포의 레이싱을 즐기며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진짜 치사해서 같이 말을 섞고 싶지 않습니다. 황급히 내리는 저를 남편이 불러 세웁니다. 

“네가 아까 마신 플라스틱 컵 챙겨가.”

더럽고 치사해서 제가 먹은 음료수 컵 제가 버립니다. 화가 나서 차문을 쾅 닫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저의 마음의 문도 쾅 닫았습니다. 차 문이 튼튼해서 부서지지 않는 게 너무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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