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차원 그녀 Apr 20. 2024

아들과 함께 책 읽어주러 갑니다.

함께 가 보실래요?

어린이도서연구회 진주지회 회원들과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는 특별한 곳을 방문합니다. 그곳은 바로 지역에 위치한 한 장애인 복지시설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2년째 책 읽어주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매번 갈 때마다 3명의 회원이 함께 갑니다. J 회원님은 사회와 노래 부르기 담당입니다. 그리고 H 회원님은 그림책을 읽어주십니다. 그리고 저는 아들과 함께 옛이야기를 읽어줍니다. 아들은 회원은 아니지만 저의 보조이자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아들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읽어 줄 책을 몇 권 빌렸습니다. 집에 와서 읽어보고 어떤 책이 더 좋을지 고민하다 <빨강 부채 파랑 부채>를 읽기로 정했습니다. 내용이 단순하고 재미있어서 장애인 분들이 쉽게 이해하시고 좋아하실 것 같았죠. 여기 시설의 장애인 분들은 지적장애를 고 계시는 분들인데 초등 1학년 수준으로 책을 고르면 맞았습니다. 연령은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십니다. 그림책을 골라오신 H 회원님도 현직 교사신데 선생님은 1학년을 여러 번 하셔서 그런지 그림책도 잘 골라오십니다.      


  금요일 저녁 급히 아들을 소환합니다. 그리고는 멋쟁이 토마토 노래를 한 번 따라 불러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빨강 부채 파랑 부채>를 읽으며 아들이 부채를 부치는 시늉할 곳을 알려주고 서로 합을 맞춰봅니다. 공들여 부채도 만들고 열정 가득인 엄마와 달리 아들은 귀찮다며 내일 알아서 잘할 테니 빨리 자자고 아우성칩니다. 이 녀석 5학년에 올라가더니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내일 똑바로 안 하면 게임 1시간 쿠폰이 사라질 거라며 엄마는 협박합니다.      


  일주일의 피곤이 몰려오는 토요일 아침, 오늘은 비까지 와서 몸이 더 피곤합니다. 그래도 10시 30분까지 가야 하니 서둘러 씻고 아침밥을 챙겨 먹습니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쯤 달려 장애인복지시설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인근 산청지회 회원분이 저희의 활동 모습이 궁금하다며 참관을 오셨습니다. 이런!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 목에 이름표를 걸고 성큼성큼 시설 내부로 들어섭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교실 가득 옹기종기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네요.     


 J 회원님의 명랑한 인사와 함께 노래 2곡을 따라 부르며 율동도 함께 합니다. 1곡은 지난달에 불렀던 개구리와 올챙이입니다. 부끄럽다며 한사코 사양하던 아들도 앞쪽으로 끌려 나왔고, 아들은 제 옆에 섰습니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율동을 하는데 아들은 앞다리가 쏙, 뒷다리가 쏙 하는 가사에서 일부러 저의 다리를 찹니다. 눈으로 째려봤는데 요놈이 못 본 척합니다. 이번 달에 새롭게 부른 노래는 멋쟁이 토마토입니다. J 회원님은 토마토 노래에 어울리는 붉은색 상의를 입고 오셔서 열심히 율동을 하십니다. 장애인 분들도 함께 나와서 연신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춤을 춥니다. 그새 부끄러움을 극복한 아들도 연신 토마토 춤을 추고 있습니다.      


  다음은 H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주십니다. 제 옛이야기가 좀 짧아서 오늘은 H 선생님이 그림책을 2권 읽기로 했습니다. 한 권은 마크서머셋의 <똑똑해지는 약>이고 한 권은 박혜선 작가의 <신발이 열리는 나무>입니다. H 선생님은 이번 주 야외 수업으로 인해 목소리 상태가 안 좋으셨는데 최선을 다해서 책을 읽어주셨습니다. 똑똑해지는 약은 메메와 칠칠이가 주고받는 대사가 거의 대부분이라 제가 칠칠이 역할을 해드렸고요. 칠칠이가 메메에게 속아 똥을 먹게 되는 장면에 모두가 빵 터졌네요. 역시 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어요. 신발이 열리는 나무는 나무에서 신발이 열리는 내용인데 귀여운 강아지가 온 동네 사람 신발을 다 물고 가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운 책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과 저는 준비한 <빨강 부채와 파랑 부채>를 읽습니다. 빨강 부채를 부치면 코가 길어지는 연기를 파랑 부채를 부치면 코가 줄어드는 연기를 아들이 능청스럽게 잘해주었습니다. 오후에 짬뽕 먹을 생각에 계속 시계만 보고 있던 HW씨도 맨 앞으로 나와 아들의 부채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아들은 앉아 계신 장애인 분들 사이를 돌며 부채도 부쳐 드리고, 요술 부채를 산 욕심쟁이 장사꾼 시늉도 능숙하게 잘해주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집에서 만들어 간 빨강 부채와 파랑 부채는 HW 씨에게 선물로 주며 조용히 속삭여 주었습니다. “HW 씨, 이거는 늘어나고 이거는 줄어드는 거예요. 헷갈리지 마요.”      


  오늘은 시설에서 어제 장애인의 날 행사를 하고 남았다며 간식꾸러미를 챙겨주셨습니다. J 회원님이 양보해 주셔서 우리는 2개나 받았지요. 마치고 친구 집에 놀러 가기로 한 아들에게 2개 다 들고 가 친구와 나눠 먹으라고 하니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역시 착한 일을 하니 복을 받는다는 옛이야기 하나 틀린 게 없네요. 매번 우리가 책을 읽어주러 가지만 그분들의 호응에 우리가 더 많은 에너지를 받고 오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피곤한 토요일 아침마다 저를 일으켜 세우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빼놓지 않고 가고 있는 거겠죠? 아들이 커서 엄마와 함께했던 이 시간만큼은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