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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Jun 23. 2024

예쁘다는 말이 불편하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학창 시절 내 사진은 모두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어려운 짧은 커트 머리였다. 처음으로 머리를 길러본 게 대학 가서였지. 아주 어릴 적 아빠를 따라 이용원에서 머리를 깎아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언니와 나 남동생 우리는 아주 우울하게 소파에 앉아서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언니도 나와 같은 처지였는데 언니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지는 모르겠다. 이용원 유리문으로 혹 아는 사람이 지나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여자가 왜 이용원에서 머리를 깎느냐고 놀릴까 봐 신경 쓰였다. 하지만 머리를 깎고 등교한 다음 날 남자 같다는 말을 빼먹지 않고 들어야 했다.    

  

4학년 여름 방학 무렵 큰엄마와 부산에 사는 사촌 언니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사촌 언니는 나와 30살 정도 나이 차가 나고 언니는 우리 아빠에게 삼촌이라고 부른다. 아무튼 보름 정도 머물다 시골에 내려갈 무렵 언니는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멜빵 치마와 구두를 사주었다. 개학하고 당연히 나는 멜빵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자랑하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나 새 옷 사고 새 구두 샀다’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거울 앞에 선 나는 남의 옷을 훔쳐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짧은 머리에 새까만 피부. 누가 봐도 남자애가 여자 옷을 훔쳐 입은 것처럼 보였다. 몇 달 동안 고민했지만 나는 새 옷과 새 구두를 입어보지도 신어보지도 못했다. 여자아이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예쁘다’ 칭찬에 그 누구보다 목말라했지만 누구도 나에게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남자애 같다. 남자처럼. 아 나는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없을 만큼 별로인 애인가 봐.     


지금은 머리도 길고 상당히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출근을 한다. 현 6학년 나의 작년 제자들은 아침마다 날 만나면 “선생님 예뻐요. 오늘 옷 너무 멋져요”라고 칭찬을 해준다. 근데 나는 아직도 그 말이 불편하다. “으으응. 고마워” 남편이 해주는 칭찬도 매번 나는 의심한다. “당신이 최고야. 오늘 엄청 예쁘다.” 세상에 나보다 예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 같은 게 예쁘다고.      


몇 년 전 학교에서 만난 한 여학생은 한여름에도 계속 긴바지를 입고 왔다. 하루는 아이를 조용히 불러서 혹시 다리에 상처가 있거나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되는 피치 못 할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아이에게서 돌아온 답은 이전 학년 같은 반 남학생이 자기 다리를 보고 뚱뚱하다고 놀렸다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반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선생님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솔직히 이야기하면 너보다 더 통통한 애들도 다 반바지 입고 다닌다며 신경 쓰지 말고 입고 다니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아이는 자기 외모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에서도 항상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친구와 트러블이 생기면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자책했고, 친구가 떠날까 봐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학기에는 상담도 받고 여러 가지로 노력했지만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애를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짠했다. 어린 시절 치마와 구두를 보며 하염없이 생각에 빠졌던 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주 딸아이가 별안간 커트 머리를 하겠다고 했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집에 왔다. 진짜 남자라고 해도 모를 정도로 남자애 같아서 걱정되었다. 월요일 학교를 다녀온 딸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댔다. 

“엄마, 오늘 6학년 모든 남자애가 나를 보러 우리 반 복도에 왔어. 나 인기 완전 많았어. 사서 선생님은 ‘독서 동아리에 남학생이 1명 늘었네’라며 웃으셨어. 우리 선생님은 생각보다 크게 놀라지 않으셔서 약간 실망했어. 그리고 마치고 피아노 학원에 갔는데 꼬맹이들이 날 너무 쳐다봐서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너 머리 자른 거 후회하는 거야?”

“아니! 후회 안 하는데. 짧은 머리의 장점이 너무 많아. 드라이기로 머리 안 말려도 되고, 엄마의 잔소리가 반으로 줄었고, 체육 할 때 머리끈 없어도 되고, 땀날 때 선풍기만 틀어도 너무 시원해. 그리고 하동에 가면 하동 할머니도 엄청나게 좋아하실 것 같아. 할머니 긴 머리 싫어하시잖아. 그리고 난 아빠 닮아 얼굴이 작으니까 어떤 머리를 해도 잘 어울린다고 아빠가 말했어”    

 

나는 안쓰럽다. 어린 시절의 내가. 남의 눈을 덜 신경 쓰고, 내가 나를 더 아끼고 사랑했다면 좀 더 행복한 기억이 많았을 텐데. 그래서 나는 딸아이가 나를 닮지 않아서 안도한다. 그리고 감사하다. 딸아이는 나보다 훨씬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샤워하고 머리를 말리며 나온 딸아이는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엄마, 나 좀 잘 생기지 않았어?”

“그래, 우리 딸 엄청나게 잘 생겼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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