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을 갈라 다투기 바쁜 모두에게 전하고픈 한 마디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말을 보았다.
나는 이 말을 조금 고쳐 쓰고 싶다. '균형 잡힌 공감은 지능이다'라고.
그렇다면 균형 잡히지 않은, 자기가 공감하고 싶은 대상에만 공감하는 '선택적 공감'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그런 선택적 공감은 지능에 마비가 온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쪽에 어느 정도 치우쳐 있기가 쉽다. '딸바보', '아들바보' 같은 말이 있는데, 아주 사랑스러운 표현이지만 이 표현에도 사실은 무언가 하나에 미쳐서 그걸 너무 좋아하면 사람이 바보처럼 보이게 된다는 진리가 숨어 있다.
어느 한 대상에만 푹 빠져서 그것을 너무 사랑하다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이제 내가 사랑하는 그 대상 위주로만 보이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그 대상에는 너무나 쉽게 공감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것들에는 나의 공감 능력을 차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어느 가정의 구성원이 자기 가족의 입장에 특히 더 공감하고,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 타인에게는 신경을 끄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사람이 우주를 다스리는 신도 아니고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도 아닌데 그 사람에게 모든 인류 구성원 각자의 입장을 하나하나 다 공평하게 헤아려달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게 지나치고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사람은 다 그러하다. 누구나 내 발에 가시 하나 박히는 아픔은 크게 느껴도 머나먼 타지의 전쟁 소식에는 쉽게 신경을 끄도록, 그렇게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사실은 누구나 이미 이렇게 '선택적 공감'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며,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이게 도를 지나치면 문제가 되고, 잘못이 된다. 내 가족 지킨다고 하다가 남의 가족이 다 죽게 생겼다고 하는데도 '내 가족 아닌데 어쩌라고'가 되면 그때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가족만 그럴까? 이 사회에서 니 편 내 편 나눠서 싸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우리 편이 한 잘못은 어떻게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려 애쓴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야.', '그럼 누구라도 그 상황에 가면 그 이상 어떻게 더 잘해?' 등 가지고 있는 공감 능력을 총동원해서 잘못을 덮어준다. 그러나 내가 '우리 편'으로 설정한 영역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내서 공격하고 비난한다.
도를 지나친 '선택적 공감',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단순히 '사람이 다 그렇지'라는 말로 넘어가 주기에는 너무 심각하고 위험한 현상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아군 적군을 설정하고 전투를 개시한다. '넌 탕수육 찍먹이야 부먹이야?', '넌 민초(민트초코) 좋아해 안 좋아해?', '애인이 내 친구의 깻잎을 떼주는 거 넌 괜찮아 안 괜찮아?' 정도까지는 그냥 귀엽게 웃어 넘길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다.
'균형 잡힌 공감'을 하는 지능 높은 사람들이 오히려 핍박 받고, '선택적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야! 공감해! 공감은 지능이야! 이걸 공감 못해? 그럼 넌 머리도 나쁘고 심성도 못된 쓰레기야'라고 자기 편의 입장에만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사회가 됐다.
이렇게 지능이 마비된 사람들과는 대화도 설득도 어렵다. 일시적이지만 자기가 선택적 공감을 하고 있는 그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지능이 현저히 낮아진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일에 기분 나쁜만큼 상대방은 또 다른 일에 기분 나쁘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상태에 빠졌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공감 능력이 매우 편향되게 발달한 사람들, 지능이 이상한 쪽으로만 발달해서 사실상 지능이 마비된 상태와 다를 바 없어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전체 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들을 윽박지르기 시작하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직 잘못된 사고 방식이 굳어지기 전인 어린 시절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들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다 큰 어른이더라도, 스스로 돌이켜보아 너무 치우쳐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균형을 되찾아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균형 잡힌 공감을 하는 지능 높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부디 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아픔과 상처들에 스며 들어 많은 오해와 편견들을 치유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