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희 시인의 '자주 가는 길'을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자주 가는 길



시인 한연희





서울 방향 자동차전용도로
차량은 기다 서다 기다 서다
이른 아침 차 안은 23도, 차 밖은 34도
도로와 중앙분리대 틈새
강아지풀과 좀씀바귀 무리가 손짓한다

어떠한 형편이든 처할 줄 알아
어떠한 형편이든 자족할 줄 알아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담아도
새털처럼 가벼워져
어디든 둥지 트고 모여 사는
그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한낮 폭염에 달궈진 아스팔트
나 살고 너 죽자고 에어컨 사용하는
차량의 행렬이 뿜어내는 매연
이상기후에 가냘픈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 생존전략 짜느라
밤새운 몰골은 아닌지
자꾸만 그들을 쳐다본다
시멘트 틈새 풀도 견디는데
나 살자고 여전히 에어컨 켜고
누더기 육신 수리하러 가는
대학병원 진료시간 늦을까 봐
천지에 가득한 허술한 마음
자꾸만 그들에게 쏠린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연희 시인의 시
'자주 가는 길'은 그의 삶과 깊이 맞닿아 있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인생관과 자연에 대한 감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연희 시인은 인생의 어려움과 고난을 자연의 일상적 모습과 연결하여 표현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이 맞닥뜨리는 복잡한 감정을 깊이 있는 시각으로 조망한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인간 존재의 고뇌와 갈등이 아니다.
그는 자연의 소박한 생명력 속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지혜와 자족을 찾고자 한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시 전반에 걸쳐 강하게 드러난다.

서울 방향으로 향하는 자동차전용도로를 배경으로 시가 시작된다.
“차량은 기다 서다 기다 서다”라는 구절은 현대인의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일상을 은유한다. 특히 이 구절에서 시인은 우리 삶의 답답함과 정체성을 표현하려 한다. 시 안에서 등장하는 "이른 아침 차 안은 23도, 차 밖은 34도"라는 대조적 온도 차이는 인간과 자연의 갈등을 상징하며,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환경과 자연 상태의 불균형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도로와 중앙분리대 틈새"에서 "강아지풀과 좀씀바귀"는 생명의 상징으로, 인위적이고 차가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는 자연의 강인함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이 구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지만, 결국 자연은 그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에게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겸손과 자족의 미덕을 상기시키는 부분이다.

두 번째 연에서는 "어떠한 형편이든 처할 줄 알아, 어떠한 형편이든 자족할 줄 알아"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는 시인의 인생철학을 강하게 드러낸다. 여기서 시인은 인생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만족과 자족을 찾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담아도 새털처럼 가벼워져”라는 표현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내면의 평화와 가벼움이 중요하다는 시인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시인은 “어디든 둥지 트고 모여 사는 그들의 고민은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자연 속 생명체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단순함 속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본질을 찾고자 한다. 이는 시인이 자연을 통해 인간 삶의 진실을 깨닫고자 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세 번째 연에서는 “한낮 폭염에 달궈진 아스팔트”와 같은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뜨겁고 메마른 도시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러한 풍경은 인간의 욕망과 생존을 위한 투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나 살고 너 죽자고 에어컨 사용하는 차량의 행렬"은 현대인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모습을 비판하며, 그 속에서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와 환경 파괴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시인은 “이상기후에 가냘픈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 생존전략 짜느라 밤새운 몰골은 아닌지”라는 표현을 통해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생존의 어려움을 암시하며, 인간과 자연 모두가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통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시인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고민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시멘트 틈새 풀도 견디는데”라는 구절이 인간과 자연을 다시 한 번 대조하며, 자연이 보여주는 생명력과 회복력을 강조한다. 시인은 이를 통해 자연의 강인함 속에서 인간이 배워야 할 지혜를 깨닫고자 한다. 그러나 시인은 여전히 에어컨을 켜고 누더기 육신을 수리하러 가는 자신을 묘사하며, 인간이 자연의 지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대학병원 진료시간 늦을까 봐"라는 구절은 현대인이 시간과 건강을 쫓아가는 무의미한 삶을 은유한다. 시인은 "천지에 가득한 허술한 마음"이라는 표현을 통해 인간이 이기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그들의 마음이 자연의 단순함과 평화를 향해 가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한연희 시인의 '자주 가는 길'은 현대인의 일상과 자연의 생명력을 대비시키며,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겸손과 자족의 미덕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 속에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투영시켜,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의 흐름은 자동차전용도로에서부터 시작해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고뇌를 이어가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작품은 자연의 회복력과 그 속에서 인간이 찾을 수 있는 평화를 그리고 있으며, 시인은 이를 통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가치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시인의 언어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이미지가 풍부하며, 그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자연 시를 넘어, 현대인에게 깊은 철학적 사유를 제공하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독자가
한연희 시인의 글을
읽고
보인 반응이다.



한연희 시인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님의 시 '자주 가는 길'을 읽고 깊은 감동과 울림을 받은 독자입니다. 시인의 목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감정들이 깨어났습니다. 이 글을 빌려 그 감정들을 전하고 싶습니다.

시의 첫 구절에서부터, 나는 익숙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낯선 깨달음을 발견했습니다. 서울을 향해 가는 자동차전용도로에서의 기다림, 그 속에서 이른 아침과 차 밖의 온도 차이는 나에게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그 안에서 느끼는 괴리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차 안에서 느껴지는 23도의 온도는 어찌 보면 우리가 만들어낸 안전하고 통제된 환경 속에서의 삶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차 밖의 34도는 자연이 주는 현실적인, 그리고 우리가 직면해야 할 실제 세상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 두 온도 차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내적 갈등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시인님께서 그리신 "강아지풀과 좀씀바귀"의 이미지는 그 간극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 모두가 도로와 같은 차가운 환경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특히 두 번째 연에서 시인님께서 전하신 “어떠한 형편이든 처할 줄 알아, 어떠한 형편이든 자족할 줄 알아”라는 말씀은 제 마음 깊이 새겨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가르침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갈망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외적인 성공이나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현재에 만족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혜와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나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시인의 통찰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형편이든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시인님께서 그리신 자연 속 생명체들처럼, 어디에서든 둥지를 틀고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얻게 해 줍니다.

세 번째 연에서 시인이 그리신 폭염 속 차량의 행렬과 그 속에서 끊임없이 에어컨을 켜는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나 살고 너 죽자'라는 식의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님께서는 그 속에서 단순히 에어컨을 켜며 환경을 파괴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더 깊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이상기후에 가냘픈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 생존전략 짜느라 밤새운 몰골은 아닌지"라는 구절은 저에게 인간의 무력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의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이상기후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짜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시인님은 물어보고 계십니다. 자연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들은 자신을 파괴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어컨을 켜고, 환경을 더더욱 악화시키며,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이 그리신 "시멘트 틈새 풀도 견디는데"라는 구절은 제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환경을 핑계 삼아 스스로의 무력함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시멘트 틈새에서조차 견디는 풀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다른 방법들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인이 그리신 대학병원을 향해 가는 길에서의 인간의 모습은 저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누더기 육신을 끌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치유해야 할 것은 단순히 육체가 아니라, 마음속의 허술함과 비어 있는 공허함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시인은 그런 마음을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연 속 생명체들의 단순함과 강인함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저는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나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 인식하게 된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시인님의 시를 통해 우리의 삶이 결국은 자연 속에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순환의 일부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그 순환 속에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인님의 시를 통해 제게 남겨진 가장 큰 교훈은 바로 겸손함과 자족의 미덕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바라며 살아가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의 시가 저에게 던져준 이 진실된 메시지는 앞으로 제가 살아가는 데 있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자연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고, 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시인님의 시가 저에게 준 이 깨달음과 감동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시인님의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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