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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游泳하는 붓, 생명을 그리다

김왕식








유영游泳하는 붓, 생명을 그리다


장상철 화백







공간을
유영游泳하는 붓은
열린 눈으로
숨을 쉰다.

화가의 붓은
마침내
새로운 시각적 세상의
문을 열고
생명력 있게
꽃을 피워 낸다.

꽃향기 찾아온
나비며
꿀벌들은 다툼 없이
서로의 허기를
채우고,
적당한 여유를
남긴 채 꽃을
떠난다.

꽃술에 남겨진
향기는 은은하여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풀벌레들을
불러 모으고,
화려하게 색을
자랑하던 꽃들은
그 빛을 감추려고
바람에 기대어
춤을 춘다.

이 소박한
축제를 내려보는
큰 나무는
가지와 잎을 열어
빛을 내어 준다.

그림숲을 지나던 누군가는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며,
또 누군가는
걸음을 재촉해
바람보다 빠른 걸음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 간다.

새들이 날아나고
화가의 붓질마져
길을 떠난
빈 캔버스는
적막하기만 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상철 화백의 시적 언어 속에서 그의 예술관과 삶의 철학이 명징明澄하게 드러난다. 공간을 "유영游泳하는 붓"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열린 눈을 가진 생명체처럼 숨을 쉬며, 새로운 시각적 세계를 창조해 낸다. 화가는 단순히 색을 칠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이며, 그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그 자체로 자생적 생명력을 지닌다.

작품 속 "꽃"은 장 화백이 탐구해 온 자연과 생명의 본질을 상징한다. 그의 그림 속에서 꽃들은 향기를 품고 나비와 벌을 부르며, 서로의 허기를 채우는 공존의 질서를 이루어낸다. 여기서 화백이 지향하는 미의식은 단순한 형상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조화로운 균형과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림 속 생명들은 다툼 없이 조화롭고,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이는 작가의 내면에 자리한 생명 존중과 자연의 순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꽃들이 빛을 감추며 바람에 기대어 춤출 때, 그 순간조차 하나의 미적 형상으로 읽힌다. 화려한 색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미(美)가 아니라, 스스로 빛을 감추고도 자연의 흐름 속에 녹아드는 것 또한 미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는 장 화백의 작품이 화려한 기교보다도 은은한 울림을 지니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인상적이다. 누군가는 멈춰 서서 감상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는 예술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반영하는 동시에, 화가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 모든 이들이 그의 예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붓질을 이어가며 생명을 불어넣는다. 마침내 새들이 날아가고 붓질이 멈추었을 때, 빈 캔버스는 적막으로 가득 찬다. 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여지를 내포한다.

장상철 화백의 투병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는 태도는 그의 예술철학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림은 시각적 표현뿐만이 아니라, 존재의 기록이며, 삶을 지속하는 이유가 된다. 그의 미의식은 대자연과 생명의 흐름 속에서 균형을 찾고, 그 조화를 담아내는 것이다. 결국 화백이 남긴 그림들은 그저 형상이 아니라, 생명력 자체이며, 그의 정신이 깃든 숲과 같은 존재로 남을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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