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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평하다

김왕식







헌재가 민주당 정치 탄핵 남발에 철퇴를 가하는구나!

칼럼니스트 이강홍



대한민국의 시끄러운 정치 탄핵이 드디어 헌재의 철퇴로 기각되어 원상 복귀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은 아직 대한민국 법이 죽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를 정치인은 생각하라. 그런데 민주당 정치인들은 오로지 과반수 이상의 의석 쪽수를 가지고 국가를 불안으로 만드는 시끄러운 정치판을 만드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하기에는 의구심이 간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가 의석수가 많으면 이렇게 정치를 폭거로 하면 되는가? 정당한 사유와 내용이 존재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탄핵이라는 것은 가장 법을 잘 지켜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그 권력을 남용해서 법을 더 안 지킨다면 입법은 누굴 위해서 추진하는가? 모든 것이 의구심뿐이다.

이제 약 100일간의 자리 공백을 깨고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제자리로 북귀되어 다행이다. 소신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공직자들을 정치로 자신들의 맘에 안 들면 탄핵을 시키며 폭거를 이룬 결과가 과연 국가에 무엇을 남겼는가? 분란으로 시끄러움만 남겼다. 이것이 우리 국회인가? 이번 국회가 가장 무능한 정치처럼 가고 있다. 현명하다면 바른 소리를 하는 국회의원 하나가 없다니 이게 무슨 이유인가?

정말 부끄러운 나라이다. 소위 말해서 선진 민주주의이고 법치주의라고 말은 하면서 법을 무시하며 움직이는 나라가 좋은가? 나라를 혼란 속으로 빠지게 한 그 책임은 강력하게 물어야 한다. 자신들이 하는 죄는 별것 아니고 남이 하면 안 된다는 것처럼 말이 되는가? 법은 공정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 자신은 예외처럼 하는 것이 우습다.

민주당이 29번의 탄핵을 하고 예산을 대폭 삭감하였다. 이것이 과연 옳은가? 누구라도 인간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 생각하라. 윤석열 정부의 파탄을 명시로 계속 반대로 가는 정치 행위다. 민심을 위한 행위는 뒷전이고 자신들의 앞날에 처신만을 생각하고 과반수를 선출해 준 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앞으로는 절대적으로 어느 당이고 과반수의 정당을 만들어 주면 안 되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22대 국회에서 국민을 무시하며 저지른 행위가 모두 다 보여 주었다. 이제 호남에서도 민주당의 행태를 보고 돌아섰다.

정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약속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약속을 지켜라. 이것이 국회의원을 하는 이유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국회의원이 되어 국회에 들어가려 하는가? 권력을 잡으려고 한다면 그 마음부터 버리고 살아라.

이제 시끄러운 대한민국 정치에 헌재가 탄핵을 기각시키며 법의 원칙을 준수하자 지켜보는 국민들은 헌재를 믿고 지켜본다. 아무리 권력을 잡고 흔들어도 원칙을 저버리는 행위는 법과 국민은 지켜보며 누굴 믿겠는가?

헌재의 탄핵 줄 기각에 민주당은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아는지, 즉시 항고를 권유하듯 협박을 하면서도 집회를 열어 자신들의 속내를 보여 주고 있다. 과연 왜 그럴까가 의심스럽다. 정치가 누굴 위한 것인지조차 의심 가는 행위를 하고 있다. 진정 나라를 위한다면 자중하며 정치를 국민이 인정하는 편안한 정치를 하라. 그것이 우리 정치의 정석이다. 칼럼니스트 이 강 흥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강홍 작가의 칼럼은 최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을 계기로,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조망하며 정치권, 특히 다수당의 탄핵 남용과 입법권 행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치의 회복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안도, 그리고 정치를 향한 실망과 분노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작가는 국민 정서를 대변하며 강단 있는 어조로 문제를 제기한다.

무엇보다 글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작가의 뚜렷한 문제의식과 소신에 있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정치적 행위가 정당한 명분 없이 반복될 때, 그것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경고는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작가는 ‘정치란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공복으로서의 정치인의 자세를 성찰하게 한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에 주목하며, 법치주의의 신뢰 회복이라는 긍정적 메시지도 담아냈다.

아울러 칼럼은 정치 현실의 민낯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로 정치의 본령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정치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다만, 글의 일부 표현이 감정에 치우쳐 독자의 해석 여지를 좁힐 수 있다는 점은 아쉽다. 예컨대 ‘폭거’나 ‘부끄러운 나라’와 같은 단어는 문제의 본질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일 수 있으나, 독자에 따라 과도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또한 특정 지역 여론에 대한 단정적 표현은 보다 신중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글의 설득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정서적 호소에 더해 구체적인 대안이나 제도적 방향 제시가 병행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강홍 작가의 칼럼은 정치의 본래 목적과 책임을 다시 일깨우며, 권력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의 중심을 강조하는 데 강한 인상을 남긴다. 현실 정치에 대한 준엄한 질책과 함께 바른 정치의 길을 촉구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오늘날 더욱 귀 기울여야 할 소중한 외침이다.

—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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