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박철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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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으로 빚은 삶, 시로 드러난 진심
— 청민 박철언 시인을 기리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그는 강직한 검사로서, 유능한 행정가로서, 그리고 경륜 깊은 정치인으로서 국가의 주요 순간마다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정무장관과 체육청소년부 장관, 3선 국회의원 등 굵직한 이력을 지닌 그는, 한국 현대사의 한 축을 온몸으로 지탱한 주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참으로 빛나는 지점은 이러한 외형적 업적 너머에 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늘 조용히 뒤에서 헌신해 온 겸손의 상징이다. 언제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삶의 권좌보다 사람의 마음을 귀하게 여겨온 인물이다.
그의 삶은 문학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 박 시인은 경북고 시절부터 ‘청맥’이라는 문학동인에서 활동했고, 서울법대 진학 후에도 시와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법과 권력의 길을 걸으면서도 내면의 언어를 잃지 않았던 그는, 삶의 풍파 속에서도 시를 통해 자아를 다잡고 세계를 성찰해 왔다. 이는 단순한 취미나 여가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였고, 고단한 세월 속에서 자신을 지탱해 온 정신적 중심축이었다.
그러한 오랜 문학적 열정과 성취는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윤동주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윤동주문학상은 단지 시를 잘 쓰는 이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시대를 읽는 통찰력,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깊은 내면의 울림이 함께 어우러진 이에게 수여된다. 박 시인은 이러한 기준을 고스란히 충족한 인물로, 그의 시는 단순한 감상의 영역을 넘어 독자에게 존재의 진실을 되묻고, 사회적 책임을 일깨운다.
그의 시에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끌어안으며, 그의 언어는 늘 낮은 자리에서 흐른다. 장관이었지만 군림하지 않았고, 국회의원이었지만 권위보다 소통을 택했다. 지금은 변호사로서 조용히 법률 상담을 해주며, 여전히 사람 곁에서 따뜻한 조언자가 되어준다. 그 모든 이력이 하나의 지향으로 모인다. “사람을 향한 삶, 진실을 향한 글.”
그의 문학은 경륜에서 비롯된 통찰로 더욱 깊어진다. 화려한 외적 성취에 비해 결코 교만하지 않았고, 늘 자신의 내면을 다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을 비우고,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며, 세상의 격랑을 넘어서려 했다. 그러기에 그의 문학은 고통 속에 핀 연꽃처럼, 고요한 감동과 위안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박철언 시인의 삶의 철학은 겸손과 진심, 그리고 지속적인 성찰에 있다. 그는 권력보다 사람을, 성공보다 진실을, 명예보다 문학을 가까이했다. 그런 삶의 궤적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길이며, 윤동주문학상이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겸손과 온기로 다져진 그의 노정은 문학과 인생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본보기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