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자운, 바람이 쉬어가는 자리
헤이리 마을 끝자락, 가장 낮고 조용한 방향으로 길을 따라가면, 바람이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가 있다. 그 자리에 자운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라 부르기엔 어딘지 주춤한, 그러나 갤러리라 부르지 않기엔 너무나 완성된 풍경. 무명천으로 빛을 가린 창 너머, 시간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 얇은 천은 햇살의 발끝을 붙들어 놓으며, 자운 선생의 얼굴에 한 겹 고요한 미소를 드리운다.
그는 마치 오래된 찻잔 같았다.
손때가 묻고, 빛이 바래고, 흠이 조금 있어도 그 자체로 따뜻한 존재. 말을 하지 않아도 자리를 데우는 사람. 무명천 아래 앉아 조용히 찻잔을 들이켜는 그의 움직임은, 산의 이마를 만지는 안개의 손길과 닮았다. 존재하되 드러나지 않고, 말하되 소리를 내지 않는, 그 조용한 중심. 그는 무엇을 말하기보다, 무엇을 지우는 방식으로 세계를 안았다.
찻물 위로 번지는 빛처럼 그의 미소는 형체보다 울림으로 전해졌다. 그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실은 가장 가까운 마음의 떨림을 보고 있었다. 고즈넉한 황톳길 가에 핀 들꽃처럼, 그의 삶은 길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 피어 있었다. 피어 있되 누군가 밟지 않도록 살짝 몸을 비켜 선 채. 그의 고요는 무심이 아니라, 무심한 듯 가장 섬세한 배려였다.
그 곁을 스쳐 가는 멧새 한 마리조차 울지 않는다. 울음조차 조용히 삼키는 풍경. 멧새는 자운을 닮았고, 바람은 자운을 돌아 나가며 고개를 숙인다. 바람은 대개 지나가지만, 이곳에선 한 번 멈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모든 일이 깊어지는 자리. 자운 선생의 하루는 그런 식으로 완성되어 간다.
세상은 언제나 말이 앞선다.
자운 선생은 말이 머물기를 기다린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보여주기보다, 그 사람이 자신을 비춰보게 하는 거울 같은 사람이다. 찻잔 속의 맑은 물이 마음을 비추듯,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말 없는 인사가 가장 깊은 예가 되듯,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선(禪)이다.
그의 방엔 이름 없는 것들이 많다. 무명, 무색, 무의(無意). 그러나 그 무(無) 안에 모든 색과 결이 숨어 있다. 햇살이 낮게 스며들고, 바람은 손끝을 감싸듯 지나간다. 삶이란 무엇인가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스며들고, 머물고, 떠나는 일이 아닐까. 그는 말없이 찻잔을 돌리며, 그 말을 대신한다.
자운은, 그렇게 한 사람의 이름이자
한 시대의 고요한 빛이며
한 자락 바람이 쉬어가는 자리였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