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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은 마음의 무게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말하지 않은 마음의 무게





사람의 마음에는
끝내 말해지지 않은 문장들이 숨어 있다
말하려다가 멈춘 숨
목 끝에서 접힌 채
다시 안으로 삼켜진 이야기들
그 침묵은 때로
한 문장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진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려 조용한 결로 눌러져
가슴 깊은 곳에서
서서히 형태를 만든다
스스로 이름을 갖지 못한 감정들이
그곳에서 오래 눌려
마음의 그림자를 만든다

누군가와 깊어지는 순간은
말이 오갈 때보다
침묵이 맞닿을 때 더 많이 찾아온다
아무 말이 없어도
마음이 조금씩 풀려나는 느낌
함께 숨만 쉬어도
서로의 온기가 전해지는 그 고요—
그 고요 속에서
진짜 마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말하지 않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도 있다
누군가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용히 등 뒤에 손을 얹어줄 때
그 침묵은 더 이상 무게가 아니라
숨통이 된다

오늘
내 안의 말하지 않은 마음을
살며시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슬픔도, 기쁨도, 오래된 미움도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부서진 조각들이 섞여 있다

이제는 안다
그 조각들을 누구에게 보일지는
시간이 결정해 준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의 무게를
알아보고 있다는 것을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그 안에는
사람을 잇는 가장 깊은 결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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