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빙판길
청람 김왕식
새벽 숨결이 얼음으로 번져드는 고샅길,
발끝 하나도 함부로 내딛지 못하는 긴장이
겨울의 어둠 깊숙이 스며 있다.
빙판은 오늘도 침묵을 갈무리한 채
아무 말 없이 길 위에 누워
사람의 걸음을 시험한다.
넘어지지 않으려는 마음들이
서로의 체온을 건네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이
겨울이 건네는 깨우침처럼 맑다.
흰 서릿발 아래 숨어 있는 얇은 얼금덩이,
겉은 단단하나 속은 속절없이 비어 있어
삶의 고비와 닮아 있다.
사람은 빙판 위에서 비로소 안다.
천천히 걷는다는 일의 위엄,
멈추어 선다는 행위의 용기,
내면을 가만히 돌보는 시간을.
넘어짐마저도 겨울은 꾸짖지 않는다.
이 땅의 모든 생이 그렇게 배우는 법을
얼음은 고요히 알고 있다.
따뜻한 숨결 한 조각이
하늘로 피어오를 때,
빙판에 어림하게 맺히는 빛의 흔적이
사람 마음의 미세한 떨림과 닮아 있다.
오늘도 길 끝에서
해묵은 겨울 햇살이 희미하게 내려와
한 줄기 생을 비춘다.
삶이란 결국
이 빙판길처럼
조심스레 내딛는 한 걸음 위에
다시 한 걸음을 얹어가는 일.
설령 넘어지더라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이의 등을
찬 바람은 아무 말 없이 밀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얼음은 녹는다.
그러나 겨울이 남긴 배움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오래 반짝인다.
오늘의 빙판길은
또 하나의 길을 가르친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넘어지더라도, 끝내 나아가라고.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