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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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새해를 미는 사람
김왕식
연말의 음악이
유리문 안에서
금빛으로 튄다
숫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확인한다
그러나
밤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쇠바퀴 하나
얼음을 깨우며 울린다
리어카는
달력을 끌고 간다
버려진 하루들
찢긴 어제들이
겹겹이 눌려
종이의 숨을 쉰다
노파의 손
장갑보다 먼저
겨울을 배웠다
굽은 손등 위로
서리가 눕고
주름은
강처럼 방향을 안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하늘은 늘
멀리 있고
약속은 미끄럽다
발밑의 얼음만이
오늘의 문장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리어카는
무겁지만
텅 비어 있지 않다
신문 속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의 얼굴
접히다 만 사연
끝내 불리지 못한 이름들이
종이의 심장으로
함께 흔들린다
폭죽이
밤을 찢을 때
그녀는
땅의 귀를 대고 걷는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얼어붙지 않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새해는
그녀에게
종소리가 아니라
체중이다
밀 수 있는지
버틸 수 있는지
오늘의 허리가
내일을 견딜 수 있는지
그것이면 된다
자정
도시는
서로의 얼굴을 밝히고
사진 속에서
새로 태어난다
그러나
어둠의 이음새에서
노파는
말없이 시간을 넘긴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싣고
리어카의 바퀴 자국 위로
눈이 덮이고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지만
도시는
그 밤을 건너간다
연말의 음악이 꺼진 뒤에도
새해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어딘가에서
허리 굽은 한 사람이
말 대신
삶을 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걸음은
시가 아니지만
이 도시의 모든 시가
그 위를 지나
다음 날로 간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