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숨, 사람의 길 ― 오하 시인의 서사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자연의 숨, 사람의 길
― 오하 시인의 서사




청람 김왕식



시인 오하,
그는
먼저 말을 배우지 않았다
바람이 먼저 불었고
물은 이미 흘러가고 있었으며
나뭇잎은 말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는 뒤늦게 사람으로 태어났다

아침마다
강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어제와 오늘을 함께 흘려보냈고
그는 그 강가에 서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은 묻지 않았다
너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남겼는가
누구보다 앞섰는가

자연은 다만
비가 오면 젖게 했고
해가 뜨면 드러나게 했으며
겨울이 오면
조용히 움츠리게 했다

그는 그 질서를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저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봄이면
새싹이 돋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돋는 것은
돋는 것이었고
피는 것은
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도
그와 같기를 바랐다

무언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를

그래서
그의 시에는
목표가 없다
다짐도 없다
다만
지나온 자리의 체온만 남아 있다

여름의 한낮
강물 위로 부는 바람을 보며
그는 알았다

세상은
항상 뜨거웠고
사람만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것을

그는
자신이 흘린 땀보다
땅에 스며든 빗방울을 더 오래 바라보았다
땀은 사라지지만
빗물은
다시 강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삶도 그러했다
눈에 띄는 성취는
시간이 지나면 말라버렸지만
조용히 건넨 마음은
누군가의 강이 되어
다시 흘러왔다

가을이 오면
그는 떨어지는 잎을 세지 않았다
누가 먼저 떨어졌는지
누가 마지막까지 버텼는지
그것은
잎의 문제가 아니라
계절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죽음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먼저 가는 이도
늦게 남는 이도
모두
자기 몫의 햇볕을
충분히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의미가 충분하다고

그의 애도는
울부짖지 않는다
그의 그리움은
소리 내어 부르지 않는다

밤하늘에 별 하나를 남겨두고
그 아래에서
조용히 말을 건넬 뿐이다

겨울의 바닷가
갯바위에 앉아
그는
자신의 생을 닮은 풍경을 본다

부서지는 파도
움직이지 않는 바위
날아갔다가 돌아오는 갈매기

그 속에서
그는
어느 것도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바위는
부서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고
파도는
부서지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는
그 깨달음을
‘겸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살아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그의 시에
자연은 배경이 아니다
자연은
삶을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문장이다

비는
슬픔이 되지 않으려 애쓰지 않고
해는
희망이 되지 않으려 힘주지 않는다

그 앞에서
사람의 삶도
굳이 위대해질 필요가 없음을
그는 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서사로 만들지 않는다
다만
자연의 숨결 위에
자신의 호흡을
조심히 얹는다

이 서사에는
영웅이 없다
극적인 반전도 없다

대신
하루를 건너온 사람 하나가
자연을 닮아
조금 낮아지고
조금 느려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낮아진 자리에서
그는 말한다

“나는
잘 살려고 애쓰지 않았다.
다만
자연처럼
살아 있으려 했다.”

그 말이
그의 시가 되었고
그의 삶이 되었으며
이 서사는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있다








시평이 시로 돌아온 자리
― 오하의 삶과 언어에 대한 가장 낮은 응답




청람 김왕식이 오하 김상철 시인의 시집 《살아오면서 느낀 점 · 점 · 점 · 》에 수록된 86편을 모두 시평한 뒤, 마지막에 남긴 이 한 편의 서사시는 단순한 헌사나 인상시가 아니다. 그것은 비평의 언어가 끝까지 밀고 들어갔을 때 도달하는 하나의 귀결점이며, 분석이 더 이상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고 시로 전환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다.
다시 말해 이 시는 시평 이후에 쓰인 시가 아니라, 시평이 시로 응축된 결과물이다.

청람은 오하 시인의 시 세계를 평가하거나 규정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는 오하의 시가 서 있었던 자리, 말이 태어나기 이전의 감각, 자연과 인간의 호흡이 분리되기 전의 낮은 높이를 끝까지 따라간다. 이 서사시는 오하 시인의 시편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강, 바람, 비, 나뭇잎, 계절의 이동 같은 이미지들을 다시 불러오지만, 그것을 개별 작품의 상징으로 재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하나의 ‘삶의 태도’로 엮어낸다. 이 점에서 이 시는 비평적 종합이되, 이론의 언어가 아닌 존재의 언어로 이루어진다.

특히 주목할 것은 청람이 오하 시인의 시 세계를 ‘자연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말의 높이를 낮춘 시’로 읽어냈다는 점이다. 그는 오하의 시에서 발견되는 반복적 정서―쓸쓸함, 담담함, 그리움, 체념에 가까운 수용―을 감정의 범주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자연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려는 삶의 자세로 해석한다.
이 해석은 오하 시인의 시가 흔히 오해받기 쉬운 ‘감상적 서정’의 영역에서 벗어나, 하나의 윤리적 미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이 서사시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다. 자연은 오하 시인의 삶을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문법이며, 동시에 청람 시인이 선택한 비평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분석 대신 동조를 택하고, 판단 대신 동행을 택한다. 그 결과 이 시는 오하 시인의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숨결처럼 기능한다. 각각의 시가 말하지 못했던 공백, 시와 시 사이에 남아 있던 여백을 이 서사시는 조용히 메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시가 오하 시인을 ‘자연주의 시인’이나 ‘관조적 시인’이라는 익숙한 범주에 가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청람은 오하의 시에서 드러나는 겸허함을 미학적 태도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것을 삶을 살아오며 어쩔 수 없이 도달한 낮은 자세, 선택이 아니라 결과로써의 윤리로 읽는다. 그렇기에 이 서사시는 찬사가 아니라 증언에 가깝다. 오하 시인이 어떤 시를 써왔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가에 대한 조용한 기록이다.

비평가가 끝내 시를 쓰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더 드문 것은, 그 시가 비평보다 더 정확하게 대상의 세계를 드러내는 경우다.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 청람은 오하 시인의 시집 86편을 모두 통과한 뒤, 그 모든 언어를 내려놓고 하나의 시로 돌아왔다. 그 선택은 비평의 실패가 아니라, 비평의 완성이다.

청람의 이 서사시는 오하 시인에 대한 총평이면서 동시에 청람 자신의 비평관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문학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며, 시는 해석되는 대상이기 이전에 하나의 삶의 리듬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이 시를 고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다.

하여, 이 작품은 시집의 끝에 놓이되, 결론처럼 닫히지 않는다. 외려 독자를 다시 처음으로 돌려보낸다. 오하 시인의 시를 다시 읽게 만들고, 자연을 다시 보게 만들며, 자신의 삶의 높이를 한 번쯤 가늠하게 만든다. 그 조용한 되돌림의 힘, 그것이 이 총평이자 서사시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ㅡ 청람



□ 오하 시인의 시집 《살아오면서 느낀 점 · 점 · 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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