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상용 시인
□ 남으로 창을 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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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와 균열 사이에서
― 김상용 문학의 윤리와 비극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상용 시인을 둘러싼 논의가 언제나 복잡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의 시가 지닌 고요한 미학과, 그가 식민지 시대 속에서 감당해야 했던 선택의 기록이 서로 어긋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어긋남을 곧장 도덕적 단죄나 문학적 무효화로 환원하는 순간, 우리는 한 인간이 겪었을 내적 균열의 깊이를 놓치게 된다. 문학사에서 끝내 물어야 할 것은 결백의 유무가 아니라, 그 결백이 흔들리던 지점에서 어떤 언어가 선택되었는가 하는 문제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를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ㅡ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전문
김상용의 시는 일제강점기의 현실을 외면한 낭만이 아니다. 외려 그 현실이 파괴해 버린 삶의 원형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호출하는 언어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 배치된 햇빛과 뜰, 고요한 방과 웃음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상실의 증언이다. 그것은 “이렇게 살아야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게 되었다”라는 말 없는 문장이며, 그 침묵이야말로 시대의 폭력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적 선택은 항일의 구호와는 다른 결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시대 인식의 부재로 환원될 수는 없다.
논쟁의 핵심은 시의 마지막 구절,
“왜 사냐건 / 웃지요”에 있다.
이 구절을 두고 당나라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을 떠올리며 표절을 거론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유사성은 표절이라기보다 동아시아 시 전통에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인용의 미학’에 가깝다.
고전 시 문학에서 타자의 언어를 호출하는 행위는 창작의 결핍이 아니라 의미의 확장을 위한 장치였다. 고려시대 문인 이인로가 한시 작법에서 체계화한 ‘용사론(用事論)’은 바로 이러한 인식의 정식화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불러오되, 새로운 역사적·정서적 맥락 속에 재배치함으로써 전혀 다른 의미의 층위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김상용의 “왜 사냐건 / 웃지요”는 이백의 언어를 빌려왔으되, 전혀 다른 시대적 무게를 얹은 문장이다. 이백에게서 웃음은 자연과 합일된 자유의 표정이지만, 김상용에게서 웃음은 설명할 수 없는 상실을 견디는 태도다. 말할 수 없기에 웃고, 울 수 없기에 웃는다. 웃음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이 된다.
이 점은 시인 윤동주가 <서시>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 노래했을 때와도 상통한다. 이 문장 역시 맹자의 *'군자삼락' 중 두 번째 구절을 표절했다는 시비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고전 윤리의 언어를 호출해, 식민지 청년의 내적 고뇌를 응축한 표현이다. 인용은 모방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기 위한 언어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김상용을 논할 때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는 1939년 조선문인협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1942년 <땀의 기쁨>을 통해 국민개로운동(國民皆勞運動)을 독려했다. 같은 해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하는 글을 썼고, 1943년에는 조선인징병제를 찬양하는 시를 발표했다. 이는 명백한 친일 협력의 기록이며, 역사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기록이 그의 시적 세계 전체를 곧바로 공허한 위선으로 만들어버리지는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 인간이 겪었을 내적 균열을 더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 김상용은 단순한 권력 추종형 지식인이라기보다, 제도 속에 편입되면서도 자신의 언어가 지향하던 삶의 형식과 끝내 화해하지 못했던 인물에 가깝다. 제국의 요구에 응답하는 글을 쓰는 손과, 인간다운 일상의 원형을 포기하지 못하고 시로 남긴 손은 같은 몸에 속해 있었다.
이 모순은 결코 변명이 될 수는 없지만, 이해의 대상은 된다. 식민지 말기의 지식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극도로 제한된 조건 속에서 생존과 직업, 가족과 제도 사이의 끊임없는 타협을 강요받았다. 김상용이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게 된 과정 역시 그러한 압박의 일면을 보여준다. 영문학 강의의 폐지는 단지 직업의 상실이 아니라, 그가 의지하던 언어의 세계 자체가 제도적으로 차단되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상용의 시는 다시 읽혀야 한다. 그의 목가적 언어는 제국에 협력한 지식인의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그 협력 속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았던 삶의 이상형에 대한 미련이자 저항의 잔여다. 그는 제국의 언어로 글을 쓰면서도, 동시에 제국이 허락하지 않는 삶의 장면을 시 속에 남겼다. 이는 용서의 근거가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이 처한 비극의 구조다.
따라서 김상용을 둘러싼 평가는 이분법을 거부해야 한다. 그는 영웅도 아니고, 단순한 변절자도 아니다. 그는 식민지라는 비극적 조건 속에서 언어와 제도 사이에 끼여 흔들렸던 한 지식인이며, 그 흔들림의 자국이 시와 산문에 함께 남아 있다. 그의 낭만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기억의 윤리였고, 그의 친일 행적은 그 윤리가 끝내 제도를 이기지 못한 자리에서 발생한 역사적 실패다.
결국 김상용의 문학은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한 인간은 시대의 압력 앞에서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끝내 버티지 못했을 때 문학은 무엇을 증언할 수 있는가. 그의 시는 평화를 말하지 않는다. 평화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인간다운 삶의 형상을 끝내 포기하지 못한 마음을 말한다. 그 마음은 그의 어두운 기록과 함께 읽힐 때에만, 식민지 지식인의 비극을 온전히 드러낸다.
그러므로 김상용의 시를 읽는 일은 미화도 단죄도 아니다. 그것은 이해의 작업이며 기억의 윤리다. 고요한 언어로 남겨진 한 인간의 갈등을 끝까지 읽어내는 일, 그 자체가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문학적 응답일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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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즐거움은 위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仰不愧於天,앙불괴어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