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너머의 자유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리벽 너머의 자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싸늘한 거리다.
유리 진열장 속 어항에 금붕어 한 마리가 떠 있다. 둥근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가여움이 먼저였다. 좁은 수조, 반복되는 동선, 투명한 벽. 자유를 잃은 생의 표본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작은 생명을 동정했다. 갇혀 있다는 판단은 언제나 이렇게 빠르다.
시선이 오래 머무르자 생각이 뒤집혔다. 금붕어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연민이 아니라 관찰이 담겨 있었다.

물속에서는 느긋하게 유영游泳하며, 숨을 고르고, 방향을 바꾸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반대로 나는 어항 밖에서 가만히 서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유리벽에 갇힌 존재로 보였을지 모른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목적지와 일정과 규칙에 묶인 채.

현대의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하지만, 고독은 희석되지 않는다. 외려 증폭된다. 수많은 얼굴과 어깨가 스치지만, 시선은 만나지 않는다. 모두가 이동 중이고, 모두가 바쁘다. 서로를 피하며 걷는 이 군중 속에서, 각자는 자신만의 유리벽을 끼고 다닌다. 투명하지만 단단한 벽이다. 보이지만 닿지 않는다.

금붕어의 어항은 작다.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고 있다. 경계가 분명한 대신, 중심이 있다. 반면 우리는 경계가 없는 대신 중심을 잃었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자유는 넓어졌지만, 방향은 흐려졌다. 그래서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나는 유리벽 앞에 서서 깨닫는다.

갇힘의 기준은 공간이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을. 좁아도 연결되어 있으면 숨이 트이고, 넓어도 단절되어 있으면 답답하다. 금붕어는 물과 이어져 있고, 나는 스케줄과 규칙에 이어져 있다. 그는 물속에서 살아 있고, 나는 유리 같은 일상 속에서 견디고 있다.

풍자는 여기서 완성된다.
동정은 오해였고, 관찰은 반전이었다. 어항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투명한 성공의 기준, 성과의 숫자, 속도의 강박. 그것들이 겹겹의 유리벽이 되어 우리를 둘러싼다. 우리는 자유롭게 걷는다고 믿지만, 실은 벽을 따라 움직인다.

싸늘한 거리에서 나는 발걸음을 늦춘다. 금붕어와의 짧은 대면이 묻는다. 지금 나는 어디에 갇혀 있는가. 그리고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 고독을 벗어나는 길은 더 멀리 가는 데 있지 않다. 벽을 인식하고, 시선을 맞추고, 숨을 나누는 데 있다. 유리벽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대신, 벽을 사이에 둔 채 서로를 알아보는 것.

그때 비로소 어항은 깨진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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