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영 시인 '빈손에 남은 바람의 문장'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임신영 시인





임신영 시인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임신영 시인께서 남긴 한 줄의 메모를 처음 마주했을 때, 문장은 짧았으나 그 안에 담긴 숨결은 길었습니다.


“지나가는 바람을 주먹으로 잡아 접시에 올렸더니 시가 되었다.”


이 문장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고, 기교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였습니다. 시를 쓰는 법을 말하기보다, 시 앞에 서는 몸가짐을 가르쳐 주는 문장이었습니다.


바람은 애초에 붙잡히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람 앞에서 주먹을 쥡니다. 잡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미는 이 행위에는 소유의 욕망이 없습니다. 외려 사라짐을 견디려는 용기, 흘러감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결심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께서 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바람이 지나간 뒤에 남는 감각이었을 것입니다.


임 시인께서 말한 ‘접시’는 특별한 그릇이 아닙니다. 매일의 식탁, 가장 낮고 가장 일상적인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바람을 올려놓는다는 발상은, 찰나의 감각을 삶의 중심으로 데려오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는 멀리서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것을 다시 일상의 높이로 옮겨 놓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이 한 줄은 조용히 증명합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흔들림이 남습니다. 잎이 떨리고, 물결이 일고, 피부에 서늘함이 번집니다. 시는 그 흔들림을 읽는 언어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사라진 것을 잠시 머물게 합니다. 주먹을 쥔 손은 끝내 빈손이지만, 그 빈손 위에 문장이 놓일 때, 시는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습니다.


임 시인께서 남긴 이 문장은 완성의 선언이 아니라 결핍의 고백입니다. 다 담아낼 수 없음을 알기에 여백을 남기고, 다 옮기지 못했음을 알기에 울림을 남깁니다. 시는 언제나 실패의 가장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의 윤리가 태어납니다. 이 한 줄은 바로 그 윤리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묻습니다.

시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 메모는 답합니다. 시는 지나가는 것을 그냥 지나가게 두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고. 손에 쥐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마음으로 한 번 더 붙잡는 사람에게 시는 말을 건다고. 바람 앞에서 멈추는 사람, 그 멈춤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시는 문을 연다고.


오늘도 바람은 지나갑니다. 많은 순간이 이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시인께서는 그 바람 앞에서 멈추는 법을, 빈손을 접시에 올려놓는 법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라짐을 견디는 마음이 언어가 되는 자리, 그곳이 시의 시작임을 이 한 줄로 증명하셨습니다.


이 글은 시인께서 남긴 그 한 줄에 대한 감사이자 경의입니다. 임신영 시인의 문학적 소양과 가치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이 문장을 오래 곁에 두고 싶어, 이렇게 마음을 올립니다.


바람을 시로 이끌어 올리는 그 태도가, 앞으로도 많은 독자들의 하루 위에 조용히 놓이기를 바랍니다.


ㅡ청람 김왕식

작가의 이전글함께라는 이름 아래,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