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징징거리지 않는다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법정의 언어와 프로의 침묵
ㅡ 프로는 징징거리지 않는다





법정은 말의 공간이다.
진실을 밝힌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언어가 부딪히고, 주장과 반박이 쉼 없이 오간다. 그러나 그 소란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말의 양이 아니라 말의 태도다.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개인의 감정은 논리로 변환되어야 하고, 억울함은 증명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때 언어는 감정의 배출구가 아니라 책임의 도구가 된다.

논쟁이 난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각자는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옳음’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입증의 문제다. 법정에서의 말은 설득이 아니라 검증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법정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차갑다. 뜨거운 분노나 억울함은 공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판결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이 지점에서 법정은 냉혹해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공정한 공간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이때 핀사의 말이 울린다.
“프로는 징징거리지 않는다.”
이 문장은 단순한 태도 훈계가 아니다. 그것은 전문성의 윤리에 관한 선언이다. 프로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억울하지 않아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함을 증명으로 바꿀 수 있기에 침묵을 선택하는 존재다. 징징거림은 감정의 과잉이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상대의 양심에 맡기는 행위이며, 책임을 타인의 공감에 위임하는 태도다. 법정에서 그런 언어는 힘을 잃는다.

프로의 언어는 다르다.
군더더기가 없다. 필요 없는 수식어를 제거하고, 감정의 울림 대신 사실의 구조를 세운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상대를 압도하는 힘은 바로 이 절제에서 나온다. 법정에서 진짜 무서운 사람은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차분한 사람이다. 그 차분함은 이미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징징거림은 패배의 언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 정돈되지 않은 사고가 흘러나오는 소리다. 반면 프로의 언어는 침묵과 말 사이의 균형 위에 서 있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말하지 않아도 될 때는 말하지 않는다. 이 선택 능력 자체가 실력이다. 법정이라는 극단적으로 언어가 평가되는 공간에서, 이 능력은 곧 신뢰로 전환된다.

이 시론이 법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사회 역시 거대한 법정과 닮아 있다. SNS, 회의실, 공적 담론의 장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변호한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감정을 앞세워 공감을 요구한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언어는 프로의 언어인가, 아니면 징징거림에 가까운가.

프로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준비로 바꾼다. 분노를 근거로, 억울함을 자료로, 감정을 구조로 변환한다. 그래서 프로의 말은 늦게 나오지만 오래 남는다. 법정에서, 그리고 삶에서 결국 신뢰를 얻는 것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프로는 징징거리지 않는다.”
이 문장은 법정의 윤리를 넘어, 삶의 태도를 겨냥한 문장이다. 말이 많아질수록 진실이 흐려지는 시대에, 이 문장은 우리에게 절제의 용기를 요구한다. 말하기 전에 준비하라고, 호소하기 전에 증명하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이 아니라 책임으로 자신을 세우라고.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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