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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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며칠 전
청리움에서
오하 김상철 시인을 만나며 비롯되었다.
그곳에 참석한 여러 지인들과 하루의 속도를 낮추고 함께 걸으며 산책을 했고,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나누고, 차를 앞에 두고 오래 이야기를 이어 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관계의 품격을 결정하는지, 가까움보다 절제가 왜 오래가는 힘이 되는지를 자연스레 느끼게 되었다.
인문학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걷고 마주 앉아 삶을 천천히 바라보는 태도 속에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그 여운이 남아, 마음에 남은 몇 가지 생각을 조심스레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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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관계를 성숙하게 만든다
청람 김왕식
며칠 전 청리움에서 오하 시인을 만났다.
하루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낮추어 산책을 하고, 식사를 나누고, 차를 앞에 두고 긴 대화를 이어 갔다. 공간은 사람을 재촉하지 않았고, 대화는 결론을 서두르지 않았다. 청리움은 그 자체로 머무름을 허락하는 장소였고, 그 머무름 속에서 사유는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차담의 중심에는 삶이 있었다.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먼저였다. 그가 인생을 살아온 방식과 세상을 관조하는 태도를 듣는 시간은, 어느 고전을 펼쳐 읽는 것보다 더 크고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문장은 없었으나 문장이 생겼고, 이론은 없었으나 원리가 남았다. 말의 수가 아니라 말의 결이 사유를 이끌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태도의 일관성이었다. 오하 시인의 말은 늘 경계를 지켰고, 판단은 늘 늦게 도착했다. 가까워지되 밀착하지 않고, 존중하되 소유하지 않는 방식. 그 절제는 인문학이 책 속의 학문이 아니라 삶의 형식임을 증명했다. 인문학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일상의 어조로 보여 주었다.
청리움이 지닌 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하 시인의 인문학적 사고는 기업을 일구는 논리로 작동하면서도 성과를 목적화하지 않는다. 효율보다 균형을, 속도보다 지속을 택한다. 그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진 성취는 사적 이익에 머물지 않고 공동선을 향해 확장된다. 기업의 성장과 인간의 품격을 분리하지 않는 태도는, 오늘의 사회가 잃어버린 기준을 조용히 복원한다.
청리움은 ‘선한 영향력’을 구호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과 관계로 증명한다. 서로를 소모하지 않는 거리, 말보다 깊은 경청, 성급한 결론을 유보하는 사유의 습관. 이런 요소들이 모여 공동체의 신뢰를 만든다. 인문학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사례다.
그날의 차담은 한 가지 확신을 남겼다. 관계와 공동체의 품격은 지식의 양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유의 깊이에서는 분명히 나온다. 그리고 그 깊이는 인문학적 태도에서 길러진다. 청리움의 아름다움은 외형에 있지 않고, 그곳을 채운 사람들의 태도에 있다.
오하 시인의 내공과 인격, 그리고 문학의 힘이 빚어낸 이 공간은, 기업과 공동체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말없이 가리키고 있었다.
□ 설경 속 청리움 ㅡ 촬영 이우창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