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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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품격
청람 김왕식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비춘다. 그러나 관계의 깊이는 가까움의 정도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외려 많은 관계는 지나친 밀착 속에서 숨이 막히고, 너무 빠른 이해 속에서 소모된다. 오래가는 관계에는 언제나 적절한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가늠하는 힘은 감정이 아니라 사유에서 나온다. 그래서 관계가 성숙해질수록, 인문학적 태도가 필요해진다.
관계는 오가는 힘으로 유지된다. 늘 한쪽만 더 설명하고, 더 기다리고, 더 감내해야 이어지는 사이는 결국 균형을 잃는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절이 아니라 조율이다. 한 발 물러서는 선택은 관계를 버리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서로의 숨을 살피는 배려다. 인문학은 이 지점을 가르친다. 인간은 감정의 존재이기 이전에, 경계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말을 아끼는 태도 또한 인문학적이다. 모든 감정을 즉시 언어로 옮기려는 태도는 진실해 보이지만, 때로는 상대를 지치게 한다.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감정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절제다. 고전이 말하듯, 말은 많을수록 깊어지지 않는다. 사유를 통과한 말만이 관계를 상하게 하지 않는다.
시간을 나누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덜 쓰는 것이 곧 마음을 거두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배분은 관계의 무게를 공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일 수 있다. 혼자의 시간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시간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인문학은 인간을 독립된 주체로 바라보는 훈련이다. 이 훈련이 없는 관계는 쉽게 의존으로 기울어진다.
자신을 낮추어야만 유지되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한쪽은 점점 작아지고, 다른 한쪽은 자신도 모르게 관계에 기대게 된다. 이는 존중이 아니라 왜곡이다. 인문학은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대하라고 말해 왔다. 이 오래된 명제는 오늘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행복은 누군가가 채워 주는 상태가 아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키며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존중을 강요할 수 없다. 존중은 요구가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 인문학은 바로 그 태도를 길러 준다. 감정보다 앞서는 사유, 즉각적인 반응보다 늦은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이 글은 사람을 멀리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곁에 있기 위한 방법을 말하고 싶다. 서로를 소모하지 않는 거리, 상처를 만들지 않는 절제, 감정 위에 사유를 얹는 태도. 이런 관계는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공부된 인간에게서 나온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책을 많이 읽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연습이다.
관계의 품격은 지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유의 깊이에서는 나온다. 그 깊이가 관계를 오래 지탱한다. 그리고 그 지탱의 힘은, 언제나 인문학에서 시작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