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승의 딸깍발이가 지금도?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자라목의 철학




일석 이희승 선생은 수필 '딸깍발이'에서 선비를 이렇게 그린다.


“얼어 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


고고하다. 단정하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이라면, 그 선비도 잠시 눈을 깜빡이지 않았을까. 겻불 앞에서 ‘원칙’이 아니라 ‘손끝’을 먼저 살피며 말이다.


오늘은 정말 춥다.

바람이 칼날처럼 옷깃을 파고들고, 사람들은 모두 목을 움츠린다. 그 모습이 꼭 자라 같다. 길 위에는 자라가 많다. 자라목을 한 자라들.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가, 바람이 불면 다시 쏙. 체면도 신념도 잠시 접어 두고, 살아남는 쪽을 택한다. 그 선택이 우습게 보일 수는 있어도, 참으로 인간적이다.


생각해 보면 혹서酷暑의 한복판에서는 이 싸늘한 날씨가 그렇게 그리워진다. 땀이 눈썹을 넘을 때는 “차라리 겨울이었으면” 하고 말한다. 겨울이 오면 또 “이게 무슨 날씨냐”라고 투덜댄다. 인간의 마음은 늘 계절보다 한 발 앞서 변덕스럽다. 그래서 인간은 철학을 만들고, 동시에 난로를 찾는다.


선비의 문장은 이상을 말해 주지만, 우리의 몸은 현실을 말해 준다. 이상은 얼어 죽을 수 있어도, 몸은 얼어 죽는 걸 싫어한다.

하여, 오늘의 우리는 겻불 앞에서 자라목이 된다. 그 모습이 꼭 비굴해서가 아니다. 인간이란, 때로는 원칙을 접고 체온을 지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얼어 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 선비가 있다면, 오늘은 잠깐 쬐어도 괜찮다고.

대신 내일,

다시 선비답게 걸으면 된다고.

자라목을 한 채로라도, 겨울을 건너는 것이 인생이니까.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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