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선생과 사상계의 현재성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유의 기준을 다시 세우다
— 장준하 선생과 사상계의 현재성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준하 선생은 한 시대의 논객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가 요구한 지성의 형식이었다. 그는 이념의 선동가가 아니었고, 권력의 대변자도 아니었다. 그의 사유는 언제나 인간에서 출발했고,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는 사상가이기 이전에 휴머니스트였다.

장준하 선생의 지성은 날카로웠으나 잔혹하지 않았고, 단호했으나 배타적이지 않았다. 그는 사상을 무기로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사상을 양심의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무엇이 옳은가보다 먼저, 그것이 인간을 살리는가를 물었다. 이 질문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희귀해진 질문이다.

지금 우리는 사상의 과잉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중심은 비어 있다. 말은 넘치지만 기준은 흔들리고, 주장은 요란하지만 책임은 가볍다. 진영의 언어는 선명하되, 인간의 얼굴은 사라졌다. 이 혼란은 사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감당할 윤리가 사라졌기 때문에 발생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장준하의 정신이 다시 요청된다.

사상계의 복간은 단순한 출판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을 잃은 시대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상을 품고 살아갈 것인가. 어떤 언어로 시대를 말할 것인가. 사상계는 과거의 영광을 복원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다. 사유의 기준을 회복하기 위해 돌아왔다.

사상계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이념이 아니다. 장준하 선생이 생의 끝까지 붙들었던 것은 이념보다 앞선 가치였다.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용기, 다수의 환호보다 양심을 택하는 결단,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태도였다. 이 가치가 무너지면, 어떤 화려한 사상도 공허한 장식에 불과하다.

우리가 장준하 선생의 이름을 부를 때 경계해야 할 것은 숭배가 아니라 계승의 책임이다. 그의 정신은 기념관에 머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의 언어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쉬운 편 가르기를 거부하며, 사유의 깊이로 공동체를 견인해야 한다.

사상계는 그 정신을 잇는 자리다. 빠른 판단보다 깊은 성찰을 택하고, 선동보다 검증을 선택하며, 진영보다 인간을 앞세우는 태도. 이것이 장준하의 사상이 오늘에 남긴 최소한의 요청이다.

흔들리는 시대에는 더 강한 구호가 아니라, 더 단단한 기준이 필요하다. 장준하 선생의 정신은 바로 그 기준이다. 사상계는 그 기준을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존중하는 방식이며, 동시에 오늘을 사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지는 책임이다.


사상계 복간 위해 애쓰고 계신
장호권 발행인,
장원 편집인 및 50여 모든 편집위원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ㅡ청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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