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시와 시평 《강물 위에 놓인 거울》 허태기 ㆍ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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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평
《강물 위에 놓인 거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태기 시인은 시인이면서 수필가이자 칼럼니스트다. 문학을 하나의 장르 안에 가두지 않고, 삶이 닿는 모든 자리에서 언어를 다듬어 온 사람이다. 그의 글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비롯되지만, 언제나 그 너머를 향해 열려 있다. 설명보다 여백을 남기고,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사물의 결을 먼저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시와 산문은 읽는 이를 설득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오래 머물며 조용한 질문을 남긴다.
《강물 위에 놓인 거울》은 허태기 시인이 쓴 시 58편과, 그 전편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이 평한 시와 시평의 공동 저서다. 이 책에서 시와 시평은 위계로 배열되지 않는다. 시가 먼저 있고, 평은 그 뒤를 따른다. 평은 시를 설명하거나 규정하지 않으며, 작품이 지닌 울림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곁에서 말을 건넨다. 두 언어는 해설과 해석의 관계가 아니라, 응답과 성찰의 관계로 나란히 놓여 있다.
허태기 시의 세계는 절제된 낭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풍경을 꾸미지 않고, 감정을 부풀리지 않는다. 대신 시간의 흐름, 관계의 미세한 변화, 마음의 움직임을 차분하게 기록한다. 자연은 장식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등장하고, 도시는 소음이 아니라 기억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는 문학을 삶과 분리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일관된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한국문인협회 인성교육개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학과 인간성의 관계를 성찰해 온 시간, 한국문예 편집국장과 등단 작가 심사위원으로서 작품을 다듬고 새로운 목소리를 맞이해 온 경험은 그의 시를 더욱 단정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든다.
평론가로서 나는 이 시집 앞에서 판단을 서두르지 않았다. 허태기 시의 미덕은 단정이 아니라 지속에 있고,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시평은 작품의 의미를 고정하려 하지 않는다. 외려 시가 열어 둔 여백을 존중하며, 독자가 스스로 작품과 만날 수 있도록 길을 비켜선다. 평은 설명이 아니라 반향이며, 분석이 아니라 동행이다.
책의 제목인 《강물 위에 놓인 거울》은 이 시집의 성격을 상징한다. 강물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거울은 그 위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흔들림 속에서도 비친 얼굴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태기 시가 지닌 힘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변화와 상실, 만남과 이별이 지나간 뒤에도 마음의 중심을 끝내 놓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그의 시를 지탱한다. 시는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 않는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방향을 조금 다르게 만든다. 이 책은 그 조용한 방향 전환을 제안한다.
《강물 위에 놓인 거울》은 시를 오래 읽어온 독자에게는 한 편 한 편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고, 시가 낯선 독자에게는 문학이 삶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시와 시평이 서로를 비추는 이 책에서, 독자는 결국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그 얼굴이 낯설지 않다면, 이미 이 책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