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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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Gauguin (폴 고갱, 1848–1903)의 선택과 탈주
― 문명을 떠난 이유, 인간을 묻는 그림, 그리고 문학적 반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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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폴 고갱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극단을 떠올린다. 안락한 증권가를 버린 선택, 문명을 등진 결단, 타히티로의 이주, 그리고 인간 본연을 묻는 거대한 질문의 회화들.
그러나 고갱의 삶을 단순한 일탈이나 낭만적 탈주로 요약하는 순간, 그의 선택은 가벼운 전설로 축소된다. 이 글은 그를 신화로 만들기보다, 한 인간이 자기 시대와 끝까지 불화하며 던진 질문의 궤적을 따라가고자 한다.
고갱이 떠난 것은 직업이 아니라 세계관이었다.
증권가는 그에게 생계를 제공했으나, 삶의 의미를 제공하지 못했다. 합리와 효율, 축적과 교환으로 작동하는 근대 문명은 인간을 설명하는 듯 보였지만, 정작 인간의 근원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 결핍을 직감했다. 그래서 붓을 들었고, 문명을 떠났으며, ‘원시’라 불린 공간으로 향했다.
여기서 원시는 미개가 아니라, 감각과 신화, 종교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았던 삶의 형식이었다.
이 글은 고갱의 선택을 도덕적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왜 인간의 기원과 종착을 묻는 질문으로 되돌아갔는지를 밝히려 한다.
그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예술적 성취 이전에 철학적 선언이다. 또한 고흐와의 인연과 파열, 그리고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가 던지는 문학적 반향은 고갱이라는 존재가 개인을 넘어 하나의 문제로 남았음을 증명한다.
이 글은 한 화가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문명이 인간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예술은 어디까지 삶을 요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태도란 무엇인지 묻고자 한다. 고갱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법을 남겼다. 이 글은 그 질문의 문 앞에 독자를 조용히 세우는 일에 그치고자 한다.
Ⅰ. 왜 증권가를 떠났는가
— 안정의 거부, 질문의 선택
Paul Gauguin이 증권가를 떠난 이유를 궁핍이나 무능으로 설명하는 해석은 사실과도, 그의 내면과도 거리가 멀다. 그는 파리 증권가에서 안정된 수입과 사회적 신뢰를 누리던 성공한 중산층이었다.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여가에는 그림을 그리며 예술을 ‘소유’할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느낀 안정은 삶의 충만이 아니라, 기능의 반복이었다.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숫자는 세계의 흐름을 설명했지만, 인간의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근대 자본주의의 합리성과 효율은 그를 보호했다. 예측 가능한 내일, 축적 가능한 성과, 교환 가능한 가치. 그러나 그 체계 속에서 인간은 점차 감각을 잃고, 신화와 종교, 내면의 불안을 언어로 만들 기회를 박탈당했다. 고갱에게 이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질식에 가까웠다. 그는 세계가 지나치게 명확해질수록, 인간이 점점 설명 불가능한 존재로 밀려나는 역설을 감지했다. 그때 예술은 장식이 아니라 탈출구가 되었다.
고갱에게 회화는 취미의 연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를 다시 묻는 방식이자, 문명이 삭제한 질문을 복원하는 언어였다. 그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왜 살아야 하는가’를 먼저 물었다. 증권가에서의 삶은 그 질문을 유예할 수는 있었지만, 결코 답하게 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생계를 잃는 선택을 감행한다. 이는 무모한 도박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사유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고갱이 떠난 것은 직장이 아니라, 인간을 기능으로 환원하는 세계관이었다. 그는 안정 대신 불안을, 축적 대신 탐색을, 설명 대신 질문을 택했다. 그 선택은 합리적이지 않았으나, 인간적이었다. 그리고 그 비합리성 속에서 그는 비로소 인간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Ⅱ. 문명 탈피와 원초성의 의미
— 도피가 아닌 비판, 회귀가 아닌 복원
Paul Gauguin이 문명을 떠난 선택은 낭만적 도피가 아니라, 근대 문명에 대한 의식적 비판이었다. 파리의 살롱과 미술 시장은 예술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거래의 대상으로 길들였고, 작품은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유행의 산물로 유통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내면은 탐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표면적 장식과 기교로 대체되었다. 고갱은 이 전환을 예술의 타락으로 보았다. 그는 문명이 예술을 보호하는 듯 보이면서도, 실은 예술이 질문해야 할 근원을 차단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브르타뉴와 타히티로 향한 이유는 ‘미개’에 대한 동경이나 이국적 취향 때문이 아니었다. 고갱이 찾은 것은 문명 이전의 시간이 아니라, 감각이 아직 언어와 제도에 포획되기 전의 상태였다. 그곳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었고, 신화와 종교는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일상의 질서였다. 삶과 의미, 노동과 의례가 분리되지 않은 구조 속에서 인간은 기능적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생산하는 주체로 살아 있었다.
고갱이 말한 ‘원시성’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그것은 근대가 잃어버린 감각의 층위를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문명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제거해 온 신화적 사고, 상징적 표현, 죽음과 탄생에 대한 질문을 다시 회화의 중심으로 불러왔다. 이때 원시는 미개함이 아니라, 세계를 하나의 총체로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자연과 인간, 신과 육체, 삶과 죽음이 단절되지 않은 인식의 상태가 바로 그가 지향한 원초성이었다.
따라서 고갱의 문명 탈피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문명이 배제한 인간성을 회수하려는 급진적 사유였다. 그는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숨어든 것이 아니라, 문명이 숨겨버린 질문을 찾아 나섰다. 그 질문의 자리에서 인간은 다시 기능을 벗고, 의미의 주체로 복귀한다. 고갱의 원초성은 그 복귀의 이름이었다.
Ⅲ. 존재를 묻는 회화
— 그리는 행위에서 사유의 형식으로
Paul Gauguin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한 점의 회화라기보다, 그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질문의 최종 문장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 고갱은 더 이상 무엇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보여주기보다 묻고, 설명하기보다 침묵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친절하지 않다. 화면은 서사를 따르지 않고, 원근은 해체되며, 인물들은 이야기를 연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존재한다.
화면 속 인간은 탄생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직선적 시간에 놓이지 않는다. 아이, 청년, 노인, 그리고 신화적 존재들이 한 공간에 병치되며, 삶은 순서가 아니라 상태들의 연쇄로 제시된다. 욕망과 고통, 무지와 체념, 사유와 침묵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한다. 이는 인간의 삶이 설명 가능한 이야기라기보다, 끝내 해석되지 않는 물음의 집합임을 암시한다. 고갱은 인간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인간을 문제로 남겨둔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형상이 아니라 색이다. 고갱의 색은 자연을 재현하지 않는다. 하늘은 하늘색일 필요가 없고, 피부는 실제의 육체색을 따르지 않는다. 색은 감정이며, 상징이며, 사유의 단위다. 그는 색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 세계가 지닌 의미의 깊이를 드러낸다. 이때 회화는 시각적 쾌락을 제공하는 장식이 아니라, 철학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형식이 된다.
고갱은 이 그림에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외려 그는 근대가 회피해 온 질문, 즉 인간의 기원과 존재의 이유, 그리고 삶의 종착을 다시 전면으로 불러낸다. 진보와 합리, 생산과 효율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시대에 그는 묻는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그림 속에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림 앞에 선 관람자의 삶으로 옮겨진다. 고갱의 회화가 오늘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그가 답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질문을 남겼고,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Ⅳ. Vincent van Gogh와의 인연과 파열
— 공존의 실패, 예술 윤리의 충돌
고갱과 고흐의 만남은 우정의 서사가 아니라, 예술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공존의 실패로 기록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동시대의 동반자로 인식했고, 고독한 예술의 길에서 상대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필요성만큼이나, 그들은 서로를 견딜 수 없었다. 문제는 성격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예술적 태도의 근본적 불일치였다.
고흐에게 자연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내부의 연장이었다. 그는 풍경을 바라보지 않고,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자연은 그의 신경이었고, 색은 감정의 직접적인 분출이었다. 붓질은 사유 이전의 몸짓이었고, 그림은 세계와 자신을 동시에 불태우는 행위였다. 반면 고갱은 자연과 거리를 유지했다. 그는 자연을 감정으로 흡수하지 않고, 구성하고 상징화했다. 자연은 해석의 대상이었고, 회화는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사유의 조직이었다.
아를에서의 공동생활은 이상적인 예술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시도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방법론의 충돌이었다. 고흐는 즉각성과 몰입을 요구했고, 고갱은 숙고와 절제를 중시했다. 한 사람은 그림을 삶의 연장으로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삶을 그림으로 전환하려 했다. 이 차이는 곧 일상의 균열로 드러났고, 긴장은 폭발로 향했다.
고흐의 귀 사건은 흔히 개인적 광기의 결과로 설명되지만, 그것은 동시에 두 예술관이 더 이상 공존할 수 없음을 드러낸 상징적 파열이었다. 고갱은 그 자리를 떠났고, 고흐는 그 이후 급속히 무너졌다. 이 분리는 배신이나 냉정함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을 대하는 윤리의 불화였다. 고갱은 예술을 통해 세계를 질문했고, 고흐는 예술 속에서 세계와 함께 소진되었다.
결국 이 만남은 실패했으나, 그 실패는 헛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파열은 근대 회화가 하나의 길로 수렴될 수 없음을 증명했다. 예술은 공존할 수 있으나, 동일해질 수는 없다. 고갱과 고흐의 결별은 그 사실을 가장 비극적으로, 그러나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Ⅴ. 달과 6펜스와 고갱의 그림자
— 예술은 어디까지 삶을 요구하는가
《달과 6펜스》는 폴 고갱의 삶에서 분명한 영감을 얻었으나, 그의 전기를 문학으로 옮긴 작품은 아니다. 서머싯 몸은 고갱이라는 실존 인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한 예술가의 삶에서 추출한 핵심적 질문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문명이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소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고갱의 복제물이 아니라, 고갱이라는 존재가 근대 사회에 던진 불편한 문제의 결정체다.
스트릭랜드는 중산층의 안정된 삶, 가족과 사회적 책임을 아무 설명 없이 버린다. 그의 선택에는 낭만도, 자기 합리화도 없다. 그는 예술을 위해 떠났다고 말하지조차 않는다. 다만 떠난다. 이 무심함은 독자에게 불쾌감을 남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은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예술의 본질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예술은 타인을 설득하지 않으며, 이해를 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때로 폭력적일 만큼 자기 완결적인 충동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고갱은 도덕적으로 변호될 대상이 아니다. 몸은 그를 위대한 예술가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예술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변주된다. 스트릭랜드는 냉혹하고, 무책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타협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독자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우리는 그를 혐오하면서도, 그의 예술적 필연성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이 딜레마는 곧 고갱의 삶과 맞닿는다. 고갱 역시 가족과 사회적 의무를 떠났고, 문명을 등졌으며, 타인의 고통 위에서 자신의 예술을 완성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몸은 이 문제를 윤리적 재판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그는 묻는다. 예술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소진시키는가. 예술은 삶을 고양하는가, 아니면 삶을 요구하는가. 《달과 6펜스》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답 대신, 질문을 견딜 수밖에 없는 상태로 독자를 남겨둔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다. 스트릭랜드의 죽음 이후에 남는 것은 작품도, 명성도 아닌 불편한 침묵이다. 그 침묵 속에서 독자는 예술과 윤리, 개인의 자유와 타인의 삶 사이의 균열을 직면한다. 이것이 바로 고갱의 그림자가 문학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는 영웅도, 악인도 아닌 채로 남는다. 다만 문명이 끝내 소화하지 못한 질문으로 존재한다.
결국 《달과 6펜스》는 고갱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고갱이 던진 질문을 문학의 언어로 확장한다. 예술은 어디까지 삶을 요구할 수 있는가. 그 요구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버릴 수 있으며, 무엇을 끝내 버려서는 안 되는가. 이 소설이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는, 그 질문이 아직도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고갱은 그림으로 그 질문을 남겼고, 서머싯 몸은 소설로 그 질문을 견디게 만들었다.
Ⅵ. 결론
— 질문을 끝까지 살아낸 한 사유자의 초상
Paul Gauguin을 실패한 도덕가로 규정하는 평가는 간편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그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점을 비껴간다. 고갱의 생애를 관통하는 것은 윤리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질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 번도 삶을 정리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삶을 계속해서 의심했고, 그 의심을 회화라는 형식으로 밀어붙였다.
고갱은 안정된 삶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러나 그것은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었다. 그는 안정을 유지하는 대신, 안정이 감추고 있는 공허를 직시했다. 증권가의 합리성, 문명의 효율성, 예술 시장의 질서는 모두 완결된 설명처럼 보였지만, 고갱에게 그것들은 인간의 근원적 질문을 유예하는 장치에 불과했다. 그는 그 유예를 거부했다. 그래서 불안을 택했고, 불편한 삶을 감수했다. 이 선택은 영웅적이지도, 모범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인간적이다.
고갱이 지향한 원초성 역시 오해되어 왔다. 그것은 미개에 대한 낭만도, 자연 속으로의 순진한 회귀도 아니었다. 그의 원초성은 문명이 삭제한 감각과 질문을 복원하려는 사유의 태도였다. 신화와 종교, 자연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인식의 구조 속에서 그는 인간이 다시 의미의 주체로 설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회화 속에서 끊임없이 시험되었다.
그의 대표작이 던지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문장은 철학 교과서의 문장이 아니라, 삶의 바닥에서 길어 올린 물음이다. 고갱은 이 질문에 답을 남기지 않았다. 답을 남기는 순간, 질문은 교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질문을 열어 둔 채, 그림을 멈추고 삶을 끝냈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완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고흐와의 파열, 《달과 6펜스》로 이어지는 문학적 변주는 고갱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화가를 넘어 하나의 문제로 남았음을 증명한다. 그는 문명이 예술가를 어떻게 소비하고, 동시에 배제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예술이 윤리와 충돌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를 묻는 불편한 거울이다. 고갱은 그 거울을 깨지 않았다. 그는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오늘의 세계는 고갱이 떠났던 근대보다 더 정교한 문명 속에 있다. 효율은 미덕이 되었고, 설명은 곧 정답으로 오해된다. 질문은 빠르게 소비되거나, 쓸모없다는 이유로 폐기된다. 이런 시대에 고갱은 여전히 불편한 인물이다. 그는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요구한다. 설명으로 안주하지 말 것, 안정에 마비되지 말 것, 질문을 끝까지 견딜 것.
고갱의 삶과 그림이 남긴 유산은 작품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태도다. 인간이 끝내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은 도덕적 완벽함이 아니라, 존재를 묻는 능력이라는 사실. 고갱은 그 능력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놓았다. 그래서 그는 실패자가 아니라, 질문을 끝까지 살아낸 사유자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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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질문을 남긴 사람, 질문 앞에 서는 우리
Paul Gauguin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한 화가의 생애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 시대와 어떻게 끝까지 불화했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며, 문명이 제시한 정답들에 대해 누군가는 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는지를 살피는 작업이다. 고갱은 예술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기 이전에, 질문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존재였다. 그의 삶이 지금도 불편하게 읽히는 이유는, 그 질문이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다.
고갱은 근대를 거부한 사람이 아니라, 근대가 회피한 지점을 끝까지 파고든 사람이었다. 증권가의 안정, 시민사회의 질서, 예술 시장의 제도는 모두 인간을 보호하는 장치처럼 보였으나, 동시에 인간을 기능으로 환원하는 구조이기도 했다. 고갱은 그 이중성을 감지했고, 더 이상 그 안에서 질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가 떠난 것은 문명이 아니라, 문명이 만들어낸 안락한 침묵이었다. 떠남은 도피가 아니라, 사유의 조건을 회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문명을 떠난 이후의 삶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가난과 질병, 고립은 고갱의 일상이었다. 그는 자연 속에서 평온을 누린 현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더 거칠고, 더 불안한 삶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다는 것은 다시 설명 가능한 세계로 복귀하는 일이며, 다시 질문을 유예하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고갱은 의지의 강인함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집요함으로 읽혀야 한다.
그의 회화는 이 집요함의 흔적이다. 고갱의 그림은 아름다움을 제공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아름다움은 감상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색은 자연을 닮지 않고, 형태는 현실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화면 전체가 하나의 사유 구조로 작동한다. 그는 회화를 통해 인간의 기원, 삶의 의미, 죽음 이후의 침묵을 동시에 불러낸다. 그의 대표작이 설명을 거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명은 질문을 닫지만, 고갱의 회화는 질문을 열어 두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고흐와의 만남과 파열은 고갱의 위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고흐가 삶과 예술을 하나의 불꽃으로 태웠다면, 고갱은 삶을 예술로 전환하기 위해 거리를 유지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했으나, 그 필요는 공존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파열은 비극이지만, 동시에 근대 예술이 단일한 윤리나 방법론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예술은 같은 질문을 공유할 수는 있으나, 같은 방식으로 살아낼 수는 없다. 고갱은 그 불가능성을 몸으로 증명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가 오늘까지 읽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 소설은 고갱을 해명하지 않는다. 대신 고갱이라는 존재가 남긴 윤리적 불편함을 문학의 언어로 지속시킨다. 예술은 어디까지 인간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예술을 위해 버린 것들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아니면 끝내 회수 불가능한 상처로 남는가. 이 질문은 소설 속 인물에게서 끝나지 않고, 독자의 윤리 감각을 시험한다. 고갱은 이 시험의 원형으로 남는다.
이 소논문이 도달하고자 한 결론은 단순하다. 고갱은 모범이 될 수 없는 인물이지만, 쉽게 폐기할 수도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삶에는 분명 윤리적 결함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결함을 이유로 그의 질문까지 무효화할 수는 없다. 문학과 예술의 역사는 언제나 이런 불편한 인물들에 의해 전진해 왔다. 그들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질문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오늘의 세계는 고갱이 살던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설명을 제공한다. 데이터와 알고리즘, 제도와 매뉴얼은 삶의 방향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그러나 그 안내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덜 묻게 된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버텨야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 일은 효율이 떨어지는 행위로 취급된다. 이런 시대에 고갱은 여전히 불청객이다. 그는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을 굳이 다시 꺼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란 끝맺음의 글이지만, 고갱에 관한 글에서 끝맺음은 가능하지 않다. 그의 삶과 작품은 언제나 미완의 질문으로 남는다. 다만 이 글이 독자에게 하나의 태도를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안정이 주는 안락함보다 질문이 주는 불안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설명이 제공하는 평온보다 의미를 요구하는 태도 말이다.
고갱은 우리에게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묻는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더라도, 질문 앞에 서 있는 한 우리는 아직 사유를 포기하지 않은 존재다. 고갱의 예술은 바로 그 지점을 끝까지 지켜낸 흔적이며, 이 에필로그는 그 질문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데에서 멈추고자 한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