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호박꽃





호박꽃은 아름답다
누가 호박꽃을 밉다 했는가.
사람들은 꽃을 볼 때 대개 위를 본다. 가지 끝에서 치솟는 화려함을 꽃의 자격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장마철 밭두렁에서 만나는 호박꽃은 위로 피지 않는다. 비를 맞고도 더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 노랗게, 조용히, 마치 부끄러움이 습관이 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이야말로 겸손의 미학이다. 호박꽃의 노랑은 단지 색이 아니라 태도다.
장마는 세상을 축축하게 만든다. 길은 진흙으로 변하고, 마음은 이유 없이 무거워진다. 습기 속에서 사람은 쉽게 짜증을 낸다. 계획은 흐트러지고 약속은 연기된다. 그때 밭에서 호박꽃을 본다. 빗방울을 이마에 이고도 원망이 없다. 자기 사정을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나는 왜 이리 낮게 피었는가” 따지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서 오늘의 꽃으로 살아낸다. 어쩌면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펼치지 못하는 날에도 꺾이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날에도 미워지지 않는 것.


호박꽃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는 지혜다. 높아지려는 욕심이 커질수록 넘어짐도 커진다. 인간은 종종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너무 많은 소리를 낸다. 그러나 정말 단단한 것들은 소리가 작다. 깊은 우물은 물결이 잔잔하고, 무거운 산은 떠들지 않는다. 호박꽃의 침묵도 그렇다. 장마철의 소란 속에서 더 조용해지는 노랑. 그 차분함은 오히려 신비롭다. 비가 흐려 놓은 세상에서, 호박꽃만은 빛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호박꽃은 열매를 부르는 꽃이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밥이 되기 위해 먼저 피어 있다. 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않는다. 피고, 지고, 남는 것은 호박 한 덩이다. 삶도 그렇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 중요한 것은 끝에 무엇이 남는가이다.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다. 말이 줄어들고, 마음이 더 많아지는 나이. 인정받기보다 책임지는 편을 택하는 선택. 나의 이름보다 가족의 저녁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런 자리에서 피는 노랑이야말로 아름답다.


나는 요즘 호박꽃에게서 배운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 멋지게 살고 싶다는 욕심, 그럴싸한 말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습관들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호박꽃은 내가 애써 꾸미지 않아도, 이미 삶이 충분히 숭고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장마 속에서도 피는 것은 용기이고, 고개를 숙인 채 빛나는 것은 품격이다.


호박꽃은 말한다.
겸손은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서 있기 위한 자세라고.
신비는 멀리 있지 않다고.
빗속에 고개 숙인 노랑 하나에도, 세상을 살리는 온기가 있다고.



호박꽃




누가 호박꽃을 밉다 했는가
화려한 꽃만 꽃이라 부르는
세상의 성급한 눈이
그 노랑을 오해했을 뿐이다

장마철
비가 세상을 다그칠 때도
호박꽃은
더 크게 피지 않는다

그저 노랗게
고개를 숙인다

비를 이기는 법이 아니라
비와 함께 견디는 법을
몸으로 보여 준다

낮은 자리의 노랑
자랑하지 않는 빛
누군가의 밥이 되기 위해
먼저 기도하는 꽃

겸손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어
세상을 살리는 일임을
호박꽃은
빗속에서
가만히 증명한다

그 노랑은
요란한 축제가 아니라
하루를 버텨낸 사람에게
조용히 건네는
따뜻한 신비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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