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이 쓰는 〈녹을 닦으며〉 ㅡ청람 김왕식









청람이 쓰는 〈녹을 닦으며〉





신새벽
문을 연다
추위가 들어오고
부끄러움이 먼저 깨어난다

대문에 붙은 녹을 닦는다
철의 녹이 아니라
내 세월의 침전이다

말의 가시
눈치의 먼지
미루어 둔 사랑이
경첩마다 굳어 있다

문지르면
붉은 가루가 떨어진다
그것은
시간이 벗겨지는 소리다

빛은
새것에서 나지 않는다
닳아본 것만
빛의 방향을 안다

나는 오늘도
온몸으로 닦는다
문을 닦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닦는다

녹이 사라지면
길이 열린다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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