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천태만상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지하철 천태만상





지하철 문이 닫히면
세상 하나가 통째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상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이 작은 철의 방 안에서
잠시 같은 시간을 탄다

9할은 휴대폰을 본다
고개는 숙이고
엄지는 바쁘다

세상은
손바닥만 한 화면 속에서
훨씬 빠르게 흐른다

쩍 벌린 다리 사이로
흔들리는 객차의 바닥이 보인다

노안老眼이 온 아저씨
안경을 이마에 걸친 채
눈을 찡그리고 화면을 들여다본다

얼굴은 심각하다
세계의 운명이
그 손바닥 속에서 결정되는 것처럼

옆자리 아줌씨는
이어폰을 꽂았다고 생각하지만
뽕짝의 후렴이
틈새로 흘러나온다

사랑은 눈물이라
사랑은 눈물이라

낡은 멜로디가
객차 천장에 부딪혀 맴돈다

젊은 학생 하나
눈을 한 번 흘기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칸으로 옮겨간다

세 사람이 앉으라고 만든
노인석에는
만취한 할아버지 한 분
몸을 벌렁 눕힌 채
세상의 중심처럼 누워 있다

입가에는 침이 흐르고
손에서 놓친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져
광화문 집회 유튜브 방송을
객차에 흘려보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세상을 구하려 애쓰는 동안

할아버지는
코를 골며
세상을 잠시 잊는다

맞은편 자리
젊은 처녀 하나가
작은 거울을 꺼내
얼굴을 고친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얼굴과
거울 속 얼굴을 번갈아 보며
붓 끝으로 하루를 다시 그린다

분홍빛이 조금 더해지고
눈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누군가에게는
출근길이고

누군가에게는
집으로 가는 길이며

누군가에게는
오늘 처음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다

객차는 흔들리고
사람들의 몸도 흔들린다

각자의 생각은
각자의 섬에 있다

같은 칸에 앉아 있지만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휴대폰 속 바다
노래 속 지난 사랑

술에 잠긴 기억
거울 속 내일의 얼굴

모두가
잠시 같은 철로 위를 달린다

지하철은
세상의 축소판이 아니라
잠시 스쳐 가는
인간의 풍경화다

한 역 지나면
사람 하나 내리고

또 한 역 지나면
사람 하나 탄다

객차의 공기는 바뀌고
삶의 장면도 바뀐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누군가는
세상으로 나가고

누군가는
세상 속으로 들어온다

지하철은 말이 없다
다만
사람들의 하루를 싣고
아무 표정 없이
도시의 심장을
천천히 통과한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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