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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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서사의 경계에서
— 헤겔을 통해 다시 묻는 문학의 방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들어가는 말
— 사유가 서사로 태어나는 자리에서
한 철학자의 생애를 돌아본다는 일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사상사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정신이 어떤 방식으로 언어를 얻고, 그 언어가 어떻게 서사와 형식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을 읽는다는 것은 철학자를 이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외려 문학하는 이들에게는 사유가 어떻게 문장이 되고, 문장이 어떻게 세계를 조직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이 된다.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의 유럽은 분열과 전환의 시간이었다. 혁명은 제도를 흔들었고, 산업은 삶의 리듬을 바꾸었으며, 인간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물어야 했다. 이때 헤겔은 현실을 단편적 사건의 나열로 보지 않고, 그 안에 흐르는 하나의 운동을 읽어냈다. 그는 세계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외려 세계가 스스로를 설명해 가는 과정을 서술하려 했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철학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서사다.
문학이 이 지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학은 감정을 기술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이 형성되는 과정,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그 이해가 다시 언어로 조직되는 흐름을 포착해야 한다. 헤겔의 사유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과정의 미학’이다. 고정된 결론보다 전개되는 구조, 단일한 감정보다 복합적인 긴장 속에서 문학은 더 깊은 층위를 얻는다.
헤겔이 말한 정신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살아 있는 형식이다. 언어와 제도, 예술과 종교, 노동과 갈등 속에서 정신은 자신을 드러낸다.
이 점에서 문학은 철학과 멀지 않다. 문학은 철학보다 먼저 인간의 경험을 포착하고, 더 섬세한 방식으로 그 운동을 기록한다. 따라서 헤겔을 읽는 일은 철학적 이해를 넘어서 문학적 감각을 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글은 그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출발한다. 헤겔의 생애와 철학을 단순히 정리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의 사유가 문학적 창작에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변증법과 정신철학의 구조를 통해, 문학이 어떻게 모순과 긴장을 서사적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모색하려 한다.
문학은 언제나 갈등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갈등 자체가 아니라 그 갈등이 전개되는 방식이다. 헤겔의 변증법이 보여주듯, 모순은 제거되어야 할 장애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계기다. 문학 역시 이 지점에서 성장한다. 단순한 해결보다 전개, 단순한 묘사보다 구조, 단순한 감정보다 사유의 깊이가 작품을 완성한다.
오늘날 문학은 방향을 자주 묻는다. 빠르게 변하는 현실 속에서 무엇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이러한 시기에 헤겔의 사유는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 태도다. 세계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형식으로 조직하려는 태도이다.
따라서 이 글은 헤겔을 설명하기 위한 글이기보다, 문학이 스스로의 방향을 묻는 자리이기도 하다. 철학과 문학은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지만, 인간을 이해하려는 점에서는 동일한 목표를 가진다. 그리고 그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문학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말은 어떻게 세계를 통과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는 일이 곧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Ⅱ. 가운뎃말
— 헤겔의 사유와 문학적 창작의 구조
1. 생애와 사유 형성: 경험이 개념으로 자라는 과정
헤겔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이 형성된 시간의 결을 함께 읽어야 한다. 한 철학자의 개념은 책상 위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구체적 장면 속에서 서서히 윤곽을 얻고, 시대의 긴장 속에서 비로소 언어를 갖는다.
헤겔이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튀빙겐 신학교에서 수학하던 시절, 유럽은 이미 오래된 질서가 흔들리던 과도기에 놓여 있었다. 신학과 철학, 정치와 예술이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던 그 시기의 공기는 단순한 학문적 배경이 아니라 그의 사유를 밀어 올린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튀빙겐에서 그는 동시대 청년 지성들과 교류하며 사유의 기초를 다졌다. 횔덜린과 셸링과 나누었던 대화는 단순한 우정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적 실험실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조화와 근대 유럽의 분열을 함께 사유하던 그들의 젊은 날은, 헤겔에게 세계를 통일된 전체로 보려는 시선을 길러주었다.
이 시기의 헤겔에게 사유는 아직 체계가 아니라 질문의 형태였고, 질문은 언제나 현실을 향해 열려 있었다.
프랑스혁명은 그의 청년기를 관통한 거대한 사건이었다. 혁명은 단순한 정치적 변화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질서를 다시 쓰려는 시도였다. 헤겔은 이 격변을 외부의 사건으로 관찰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시대정신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하나의 장면으로 이해했다. 이 경험은 세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전개되는 과정으로 보는 그의 관점을 결정적으로 형성했다.
특히 예나 시기의 헤겔은 사유의 급류 속에 서 있었다. 정치적 격변과 학문적 논쟁이 교차하던 그 도시에서 그는 철학이 현실과 분리될 수 없음을 절감했다.
나폴레옹을 “세계정신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으로 보았다는 그의 언급은 상징적이다. 그것은 개인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역사를 정신의 운동으로 읽으려는 철학적 태도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생애의 궤적은 문학적 창작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유는 고립된 사색 속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경험 속에서 자라고, 갈등 속에서 단련되며, 언어 속에서 비로소 형식을 얻는다.
문학 역시 그러하다. 현실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경험이 사유로 정리되고 다시 서사로 조직되는 과정을 포착할 때 작품은 깊이를 획득한다.
문학의 창작 과정은 종종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체험이 보편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사유의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헤겔의 생애는 바로 그 과정을 보여준다. 경험은 곧바로 작품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숙성과 성찰을 거쳐야 하며,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개념적 밀도를 얻는다. 이 밀도는 다시 형식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서사로 전환된다.
따라서 헤겔의 생애를 읽는 일은 철학사를 이해하는 작업을 넘어 문학의 구조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그의 사유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삶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구체적 결과였다. 이 점에서 문학은 철학과 멀지 않다. 오히려 문학은 철학보다 먼저 삶의 경험을 포착하고, 더 섬세한 방식으로 그 운동을 기록한다.
헤겔의 생애는 하나의 메시지를 남긴다. 사유는 삶에서 태어나고, 삶으로 돌아간다. 문학이 그 사유의 길 위에 설 때, 언어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세계를 조직하는 힘을 갖게 된다. 이 지점에서 문학은 더 이상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를 해석하는 하나의 형식이 된다.
2. 변증법과 서사의 동력
헤겔 철학의 중심에는 변증법이 놓여 있다. 그는 세계를 고정된 질서의 집합으로 보지 않았다. 세계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넘어서는 운동이며, 그 운동의 방식이 곧 변증법이다. 한 개념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며 그 반대를 불러오고, 그 긴장은 더 높은 차원의 통일 속에서 새로운 국면을 형성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심화라는 점이다. 모순은 제거되어야 할 장애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계기다.
이 구조는 문학적 창작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모든 서사는 갈등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갈등은 사건의 충돌이나 감정의 대립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인물과 세계가 서로를 비추며 변화하는 과정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갈등을 해소의 대상이 아니라 전개의 원리로 이해하게 한다. 문학이 단순한 사건의 배열을 넘어 구조적 긴장을 갖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서사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존재의 문제로 확장된다.『정신현상학』에서 드러나는 의식의 여정은 하나의 장대한 서사로 읽힌다. 감각적 확신에서 지각으로, 지각에서 오성으로, 다시 자기의식과 이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해 가는 긴 이야기다. 이 여정은 직선이 아니라 굴곡을 지닌다. 매 단계는 이전의 한계를 드러내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이러한 구조는 문학적 서사의 전개 방식과 깊이 맞닿아 있다. 좋은 서사는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되묻고 수정하며 더 넓은 의미로 이동한다.
특히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문학적 창작과 밀접한 통찰을 제공한다. 자기의식은 고립된 상태에서 형성되지 않는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인식한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이 좌절되는 경험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긴장을 드러낸다.
문학이 인물을 통해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 역시 이와 같다. 인물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드러나고, 갈등 속에서 변하며, 그 변화 속에서 독자는 세계의 구조를 읽는다.
변증법적 관점에서 보면 인물은 완성된 성격이 아니라 형성되는 존재다. 사건 또한 결말을 향해 직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순과 선택의 축적 속에서 방향을 바꾼다.
따라서 서사의 긴장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생성된다. 인물의 내면과 외부 현실이 충돌하는 순간, 서사는 비로소 깊이를 얻는다.
변증법은 문학 창작자에게 하나의 방법론을 제공한다. 서사는 단순한 플롯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갈등을 배치하는 방식, 긴장을 유지하는 호흡, 모순을 해소하지 않고 견디게 하는 태도는 작품의 수준을 결정한다. 헤겔의 사유는 문학이 갈등을 단순한 장치로 소비하지 않고, 의미를 생산하는 구조로 전환하도록 이끈다.
또한 변증법은 시간의 감각과도 연결된다. 서사는 현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동시에 작용한다. 헤겔이 역사 속에서 정신의 운동을 보았듯, 문학 역시 시간의 층위를 겹쳐 놓을 때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사건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현재의 선택을 압박한다.
변증법은 문학이 삶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그것은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이며, 모순을 제거하지 않고 사유의 자원으로 삼는 자세다. 문학이 이 원리를 받아들일 때, 서사는 단순한 이야기의 형식을 넘어 인간 존재의 운동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구조가 된다.
변증법은 철학의 개념을 넘어 문학의 호흡이 된다. 긴장과 이완, 충돌과 화해, 부정과 생성이 교차하는 리듬 속에서 서사는 스스로의 방향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독자는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스스로를 전개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3. 정신철학과 형식의 문제
헤겔은 정신의 자기표현을 예술, 종교, 철학이라는 세 형식으로 구분했다. 예술은 감각적 형상 속에서 진리를 드러내고, 종교는 상징과 신앙의 언어로 그것을 체험하게 하며, 철학은 개념을 통해 그 의미를 자각하게 한다. 이 구분은 위계라기보다 표현 방식의 차이를 설명한다. 정신은 하나이되, 그 드러남의 방식은 다르다. 그리고 이 세 형식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외려 서로의 결핍을 보완하며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이 점에서 문학은 독특한 자리에 선다. 문학은 감각적이면서도 개념적이고, 상징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그것은 이미지와 사유가 동시에 작동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문학적 창작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형식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더 근본적인 질문이 된다.
헤겔이 강조한 것은 형식이 내용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용은 형식을 통해서만 드러나며, 형식은 내용을 통해 정당성을 얻는다. 형식은 외부에서 덧붙여지는 장식이 아니라 의미를 발생시키는 구조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주제가 아무리 분명해도 그것이 적절한 형식을 얻지 못하면 작품은 설득력을 잃는다. 반대로 형식이 살아 움직일 때 내용은 스스로 깊이를 확보한다.
문학이 형식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한 이야기의 전달이 아니라 이야기의 조직 방식 자체가 사유의 결과가 된다.
서사의 배열, 시점의 선택, 문장의 리듬, 침묵의 간격까지 모두 형식의 일부다. 이 요소들이 서로 긴밀하게 작동할 때 작품은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형성한다.
헤겔의 정신철학은 문학이 형식을 사유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정신은 자기표현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한다. 문학 역시 표현을 통해 자신을 이해한다. 형식은 작가의 선택이자 동시에 시대의 감각이 반영된 결과다.
따라서 문학적 형식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의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학의 형식은 언제나 변화한다. 시대가 달라질수록 인간의 경험 방식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표현의 방식도 달라진다. 고전 서사에서 근대 소설로, 서정시에서 산문시로 이어지는 흐름은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정신의 변화가 형식 속에 반영된 결과다. 헤겔의 철학은 이러한 변화를 우연한 흐름이 아니라 필연적 전개로 이해하게 한다.
또한 형식은 윤리적 차원과도 연결된다. 형식은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반영한다. 과장된 수사와 장식적 표현이 아니라 절제된 구조와 긴장된 언어를 선택하는 일은 곧 세계를 대하는 방식의 선택이다. 이 점에서 형식은 미학적 판단을 넘어 윤리적 결정이 된다.
문학에서 형식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유의 방식이며 존재를 해석하는 틀이다. 헤겔의 정신철학은 문학이 자신의 형식을 통해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고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학이 형식을 의식적으로 사유할 때, 작품은 단순한 서술을 넘어 하나의 살아 있는 구조로 완성된다.
이처럼 정신의 자기표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문학의 형식은 외형이 아니라 내용의 심장이다. 형식과 내용이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긴장 속에 놓일 때, 문학은 비로소 사유와 감각이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4. 역사와 문학의 시간성
헤겔은 역사를 단순한 사건의 연속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역사를 자유의식이 점차 확장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그 인식의 깊이에 따라 더 넓은 자유를 자각한다.
이때 역사는 외부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정신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무대가 된다. 사건은 단절된 파편이 아니라 하나의 전개 속에 놓이며, 그 전개는 언제나 의미를 향해 움직인다.
이 관점은 문학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문학은 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형식이지만, 동시에 시대의 의식을 드러내는 장치다. 개인의 기억과 감정은 언제나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문학은 사적인 고백을 넘어, 자신이 속한 시간의 구조를 읽어내는 작업이 된다. 작품 속의 한 문장은 종종 한 시대의 감각을 응축하고 있으며, 한 인물의 선택은 그 시대가 안고 있던 모순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헤겔이 역사를 하나의 서사로 이해했듯, 문학 역시 시간의 흐름을 단순히 따라가지 않는다. 문학은 시간을 재구성한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 속에서 다시 의미를 얻고, 미래의 가능성은 현재의 선택을 압박한다.
이처럼 문학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중층적 구조를 지닌다. 서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를 비추는 공간이 된다.
문학적 창작은 따라서 단순한 개인적 감정의 표출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시대와의 대화이며, 역사적 시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묻는 행위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 시대의 공기를 감지해야 한다. 시대의 언어와 침묵, 표면의 사건과 보이지 않는 긴장을 읽어낼 때 작품은 개인적 기록을 넘어 보편적 울림을 갖는다.
또한 문학은 역사를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를 해석한다.
헤겔이 역사를 정신의 전개로 읽었듯, 문학은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그 의미를 조직한다. 한 장면의 묘사 속에서도 역사적 시간은 숨 쉬고 있으며, 서사는 그 숨결을 감지할 때 깊이를 얻는다.
이 점에서 문학의 시간성은 윤리적 성격을 지닌다. 시간에 대한 인식은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 미래를 상상하는 태도는 모두 작품의 형식 속에서 드러난다. 문학이 시간을 성찰할수록 인간의 삶은 더 넓은 맥락 속에서 이해된다.
헤겔의 역사관은 문학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게 한다. 문학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을 고립된 상태로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형성된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는 작업이 된다. 문학이 역사적 시간과 만날 때, 서사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한 시대의 정신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확장된다.
문학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문장은 어떤 시간 속에 놓여 있는가. 그 질문을 향해 나아갈 때, 문학은 비로소 현재를 넘어서는 깊이를 획득한다.
Ⅲ. 맺음말
— 사유와 창작의 만남을 위하여
헤겔의 철학은 단순히 하나의 사상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며, 동시에 사유가 형식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가장 치열하게 보여준 사례다. 그의 사유는 관념의 탑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삶의 경험과 역사적 현실 속에서 형성되고, 그 현실을 다시 해석하는 언어로 되돌아간다.
헤겔의 철학은 문학적 창작에 단순한 참고가 아니라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문학은 감정의 기록에 머물 수 없다. 감정은 언제나 사유의 구조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갈등을 피하지 않고, 모순을 배제하지 않으며, 긴장을 전개의 동력으로 삼을 때 작품은 깊이를 얻는다. 헤겔의 변증법은 문학이 단순한 이야기의 나열을 넘어 복합적 구조를 형성하는 데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갈등은 해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은, 문학이 서사를 조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날 문학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야기 속에서 자주 방향을 잃는다. 사건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사유의 깊이는 얕아졌고, 표현의 다양성은 넓어졌지만 형식의 긴장은 느슨해졌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헤겔의 사유는 다시 묻게 한다. 문학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형식은 장식이 아니라 의미의 구조이며, 형식이 살아 있을 때 비로소 내용은 지속된다.
또한 헤겔의 철학은 문학이 시대와 맺는 관계를 새롭게 보게 한다. 문학은 개인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기록이다. 한 문장은 한 시대의 감각을 담고, 한 인물의 선택은 한 사회의 긴장을 드러낸다. 따라서 문학은 언제나 역사적 시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이때 문학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해석의 형식이 된다.
결국 철학과 문학은 서로 다른 형식을 취하지만 동일한 질문을 향한다.
인간은 누구인가, 세계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헤겔은 이 질문을 개념으로 탐구했고, 문학은 그것을 서사로 드러낸다. 두 영역은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으나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이 글이 제시한 방향은 완결된 결론이 아니라 열린 출발점이다. 문학하는 이들이 헤겔을 통해 사유의 깊이를 배우고, 그 깊이를 다시 서사로 전환할 때 문학은 다시 살아 있는 언어가 된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사유가 형식을 얻는 순간,
문학은 비로소 세계를 말하기 시작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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