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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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스물다섯의 괴테는 한 권의 소설로 살아났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은 어떤 젊은이들은 그와 반대로 삶을 떠났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한 청년의 사랑과 좌절, 그리고 감정의 극단을 담은 작품이었다.
괴테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통과했고, 문학은 그에게 하나의 출구가 되었다. 사랑의 실패와 현실의 벽 사이에서 그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썼다. 글쓰기는 그에게 치유였고,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그것은 다른 방식으로 작용했다.
베르테르의 고독과 절망, 감정의 순수함은 당시 유럽 청년들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켰다. 특히 사랑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이 소설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거울이 되었다.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따라 하고, 그의 언어를 흉내 내며, 끝내 그의 선택을 모방한 사례들이 이어졌다. 훗날 이것은 ‘베르테르의 신드롬’이라 불리게 된다.
이 현상은 문학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문학은 단지 감상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행동을 흔드는 힘을 지닌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괴테의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감정의 가장 깊은 층을 건드린 기록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시대의 심장을 건드렸고, 동시에 상처 입은 영혼의 약한 부분까지 건드렸다.
이 비극적 현상을 단순히 문학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당시 유럽 사회는 감정의 표현이 억눌려 있었고, 개인의 고통을 말할 통로가 많지 않았다. 베르테르는 그러한 시대적 공백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었다. 청년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 동일시가 때로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괴테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그는 감정을 파괴가 아니라 창조로 전환했다. 절망을 문장으로 옮겼고, 고통을 예술로 바꾸었다. 그에게 문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해서
베르테르의 신드롬은 문학의 위험성만이 아니라 가능성도 함께 말해준다. 같은 작품이 어떤 이에게는 파괴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구원이 된다. 차이는 작품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에 있다.
오늘 우리는 그 현상을 다시 돌아본다. 사랑을 잃은 청춘의 고통은 시대를 넘어 반복되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는 여전히 개인의 몫이다. 문학은 길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괴테의 베르테르는 죽었지만, 괴테는 살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에서 한 가지를 배운다.
감정은 끝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문학은 절망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절망을 견디기 위한 언어라는 것을.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