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서산마루에
청람 김왕식
서산마루
해 질 녘 ,
그 빛은 멀리서 오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하루의 끝을 밝히고 있었다.
정년 퇴임한 노교사는 오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교단 위에서 보낸 세월은 길었고, 아이들의 이름과 목소리는 그의 기억 속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분필 가루 묻은 손으로 칠판을 두드리던 날들, 교무실 창가에 기대어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던 오후들, 그리고 마지막 종이 울리던 순간까지. 그는 늘 누군가의 앞에 서 있었고, 누군가의 내일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제 그는 자신의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
남향으로 난 한 평 남짓 쪽문을 내고, 그 앞에 서너 평 되는 텃밭을 일군다.
괭이는 필요 없다. 손에 익은 호미 하나면 충분하다. 흙을 뒤집고, 잡초를 뽑고, 물을 주는 일은 노동이라기보다 호흡에 가깝다. 상추 몇 잎이 자라고, 오이와 가지가 조용히 몸을 키운다. 그 소박한 결실을 상에 올릴 때,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과, 생명을 기르는 일은 닮아 있다는 것을.
낮이 되면 그는 느릿하게 읍내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특별한 목적은 없다. 그저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러 가는 길이다. 시장 골목에는 늘 비슷한 얼굴들이 있고,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상인들이 있다. 누군가는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웃음에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시간은 흘렀지만, 관계는 사라지지 않았음을 아는 사람의 여유가 담겨 있다.
그는 잔치국수 한 그릇을 시킨다.
김이 오르는 국수는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좋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리면, 국물의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진다. 거기에 탁주 한 사발을 곁들인다. 거나하게 목을 적시면, 하루의 무게가 스르르 내려앉는다.
술기운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풀린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다.
시장은 조금씩 소리를 낮추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집 쪽으로 향한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급할 것이 없다. 이제 그의 시간은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산마루에 걸린 해를 마주한다.
황혼 녘의 빛은 유난히 깊다. 눈부시지 않지만 오래 머문다. 화려하지 않지만 마음을 적신다. 그는 그 빛을 한참 바라본다. 그리고 문득, 그것이 자신의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의 태양은 뜨겁고 눈부셨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앞서 걸어가야 했던 시간들. 그러나 이제 그의 삶은 서쪽으로 기울어 있다.
기울어진다는 것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외려 가장 깊은 빛을 남기는 시간이다.
그는 마루에 앉는다.
텃밭에서 따온 채소가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평온한 저녁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귀하다.
오십 년을 누군가의 앞에서 살았다면,
이제는 스스로의 안에서 살아갈 시간이다.
서산마루에 걸린 해는 천천히 내려가고,
노교사의 하루도 그렇게 조용히 저문다.
허나
그 저묾은 끝이 아니다.
긴 생을 지나온 사람이 남기는, 가장 따뜻한 빛의 자리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