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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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백치》인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지금, 왜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가 지금 다시 필요한가,
요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점점 더 똑똑해지는데, 마음은 점점 더 메말라가는 것은 아닌가. 정보는 넘치고 판단은 빠르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은 점점 드물어진다. 이럴 때 백치는 우리에게 아주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 미시킨 공작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참 답답한 사람이다. 계산을 못 하고, 눈치도 빠르지 않다. 손해를 보면서도 사람을 믿고, 상대의 상처를 먼저 본다. 요즘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착하지만 현실 감각 없는 사람” 정도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정말 문제가 있는 쪽은 미시킨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일까.
요즘 우리는 사람을 너무 빨리 판단한다. 몇 마디 말, 몇 장의 사진, 몇 줄의 댓글로 그 사람을 규정한다.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쉽게 단정 짓는다. 그러나 《백치》는 말한다.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한 사람 안에는 선함과 이기심, 따뜻함과 잔혹함이 함께 들어 있다고.
특히 요즘은 공감이 많아진 시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빠른 공감’이 대부분이다. 뉴스 하나를 보고 잠깐 마음 아파하다가 금방 잊는다. 누군가의 고통은 소비되고 지나간다.
미시킨은 다르다.
그는 고통 앞에서 멈춘다. 오래 본다. 그리고 함께 아파한다.
이 차이는 크다.
아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성공’에 대한 기준이다. 요즘은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주는 시대다. 돈, 성취, 자리, 평가. 이런 것들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백치》는 전혀 다른 기준을 내놓는다.
“사람은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했는가로 드러난다.”
미시킨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외려 실패한 사람에 가깝다. 그가 보여준 태도, 사람을 끝까지 이해하려는 마음, 그 순수함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지친다. 경쟁 속에서, 비교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쓰다가 스스로를 잃어버린다. 이럴 때 《백치》는 말한다.
“잠깐 멈춰라.
그리고 사람을 다시 보라.”
이 소설에는 또 하나 중요한 인물이 있다. 나스타샤 필리포브나. 그녀는 아름답지만 불안하고, 사랑을 원하지만 스스로를 파괴하는 인물이다. 이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도 닮아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무너져 있는 모습. 《백치》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왜 선한 사람은 오해받는가.
왜 진심은 자꾸 어긋나는가.
왜 사랑은 때로 상처가 되는가.
이 질문들은 지금 우리가 매일 겪는 문제다.
하여, 《백치》는 필요하다.
이 소설은 우리를 편하게 해 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묻게 한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사람은 점점 바빠진다.
그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 자체다.
지금 《백치》를 읽는다는 것은
옛 고전을 읽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그 질문을 놓지 않는 한,
이 소설은
지금 이 시대에도
가장 살아 있는 이야기로 남는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