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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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편지, 깊은 관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프리드리히 실러는 평생에 걸쳐 천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편지들은 단순한 안부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한 사람에게 건너가는 길이었고, 그 길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해 갔다. 문학을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삶을 나누었고, 작품을 논했지만 결국은 인간을 묻고 있었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오래 머물렀고, 보낸 뒤에는 기다림이 따라왔다. 그 기다림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신뢰의 시간이었다. 답장이 오기까지의 그 사이에서 사람은 더 생각하게 되고, 더 깊어지게 된다.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산다.
메시지는 즉시 도착하고, 답장은 몇 초 만에도 돌아온다. 읽었는지까지 확인된다.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지만, 그만큼 마음이 머무는 시간은 짧아졌다.
예전의 편지는 한 사람을 향해 쓰는 시간이었고,
지금의 메시지는 순간을 스쳐 지나가는 신호에 가깝다.
괴테와 실러의 관계는 단순히 자주 연락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의 생각을 견디는 관계였다.
상대의 문장을 읽고 쉽게 판단하지 않았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다.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았고, 다만 이해하려 했다.
요즘의 관계는 자주 닿으면 가까운 것 같고, 잠시 뜸해지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짧은 말은 넘치지만, 긴 마음은 점점 드물어진다.
친구란 무엇인가.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괴테와 실러는 서로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삶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 지켜봄 속에서 각자의 길은 더욱 단단해졌다.
요즘 우리는 관계 속에서도 효율을 따진다.
불편한 대화는 피하고, 갈등은 빠르게 정리하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정리된 관계는 오래 남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때로 불편한 시간도 필요하고, 이해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하다.
천 통의 편지는 그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그만큼 오래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의 시대는 빠르고 편리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다.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
그의 생각이 다 자라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일,
그가 흔들릴 때 곁에 머무는 일.
이 단순한 일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괴테와 실러의 편지가 더 필요하다.
천 통의 편지를 쓸 필요는 없다.
다만 한 사람에게,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읽어 주는 마음,
쉽게 판단하지 않고 오래 머무는 시선,
그것 하나만으로도 관계는 충분히 깊어진다.
사람은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 몇 사람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켜 나간다.
괴테와 실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삶은 이미 충분히 따뜻하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