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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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향한 걸음, 제자를 향한 기다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요한 페터 에커만은 한 사람을 찾아 길을 나섰다. 이름난 문인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깊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스승으로 삼고자 했고, 그 마음 하나로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 만남은 단순한 인연이 아니었다. 준비된 마음이 길을 만들고, 그 길이 사람을 만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에커만은 10년이라는 시간을 괴테와 함께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천 번이 넘는 산책을 함께했다. 그 산책은 단순한 걷기가 아니었다. 말이 오가고 생각이 흐르고, 삶이 서로의 안으로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그는 스승의 말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었다. 말의 뜻을 적은 것이 아니라, 그 말이 태어나는 과정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쳤다. 어떤 순간에는 질문보다 기다림이 더 깊은 답이 되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괴테와의 대화》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남았지만, 그 책의 본질은 글이 아니라 동행이었다.
지금의 시대를 돌아보면,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깊이는 점점 얕아지는 듯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빠르게 배운다. 강의는 넘치고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함께 걷는 시간은 줄어들고,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바라보는 경험은 드물어지고 있다. 지식은 전달되지만 삶은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에커만과 괴테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는, 그들이 서로를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커만은 스승을 이해하려 애썼고, 괴테는 제자를 기다렸다. 가르침은 강요되지 않았고, 배움은 조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았고, 다만 서로의 시간을 함께 견디며 깊어졌다.
스승이란 단지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삶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제자란 단순히 듣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삶을 오래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참된 배움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다.
요즘 우리는 너무 빨리 배우고, 너무 쉽게 판단한다. 결과를 서두르고, 성취를 앞세운다. 그러나 진짜 배움은 그런 속도 속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함께 머물고, 함께 걷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깊어진다.
에커만이 10년을 머물렀던 것처럼, 천 번의 산책을 반복했던 것처럼, 배움은 반복과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몸에 스며든다.
소망을 품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스승이 곁에 있기를.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내 곁에 와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길을 만나는 일이고, 제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 길을 함께 걷는 일이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함께한 시간은 오래 남는다.
한 사람의 인생에 단 한 명의 스승, 단 한 명의 제자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에커만이 괴테를 통해 자신의 길을 발견했듯이, 누군가에게 그런 길이 되어 주고 또 누군가에게 그런 길을 만나는 일. 그것이야말로 한 생을 가장 깊게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