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기억은 어떻게 현재를 지배하는가
사람은
현재를 살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보고
지금 듣고
지금 숨 쉬고 있으므로
자신이
지금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람은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미 지나간 것들 위에
서 있을 뿐이다.
현재는
순수한 지금이 아니라
기억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자리다.
어떤 풍경을 볼 때
그것이 처음이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그와 닮은 장면을
한 번 살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다.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닮은 기억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본다.
이때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다.
기억은 선택한다.
무엇을 남길지
무엇을 지울지
어떻게 왜곡할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기억은
사실보다 강하다.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어떻게 기억되느냐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
사람은
과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 때문에 살아간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과거는 이미 끝났지만
기억은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특히 그리움이 개입하면
기억은 현실보다 더 강해진다.
그리움은 기억을 붙잡고
기억은 현재를 붙잡는다.
이 구조 속에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사실은
뒤를 향해 살고 있다.
어떤 순간은
이상하게 무겁다.
지금의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간이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완전히 떠나보낸 적 없는 것들이
계속 현재로 돌아온다.
사람은 그것을
지우려 한다.
잊으려 하고
덮으려 하고
멀어지려 한다.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기억은
남겨진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선택해야 한다.
지우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는 쪽을.
기억을 버리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줄어든다.
반대로
기억을 받아들이면
무거워지지만
깊어진다.
이때 그리움은
다시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리움은
과거에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기억을 현재로 연결하는 힘이다.
사람은
기억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기억 때문에
다시 살아간다.
이미 지나간 것들이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붙잡힘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끊어지지 않는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