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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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보며
미당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 빛의 등성이를 들어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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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 등성이에 기대어
— 삶을 품는 넓이의 시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햇빛 아래 드러난 산의 등성이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끝내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의 형태다.
시《무등을 보며》는 자연을 노래하는 듯 보이나, 실상은 인간 존재의 품격을 묻는 시다. 가난과 고통, 생의 굴곡을 전면에 두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태도의 넓이를 제시한다.
첫 구절에서 가난은 “남루”로 축소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난의 부정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가릴 수 없다는 인식이다.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은 존재의 근원이며, 어떤 시대적 고통도 훼손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전쟁 직후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이 선언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존엄에 대한 확언이다.
이어지는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중심을 이룬다. 자연은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품는다. 인간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요청이 이 비유 안에 스며 있다. 자식을 기르는 행위는 생존의 반복이 아니라 존재의 연속이다. 이때 삶은 경쟁이나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이어짐과 견딤의 문제가 된다.
시의 후반부는 더욱 낮은 자세로 내려간다. “더러는 앉고 /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는 권유는 삶을 버티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다. 서서 견디는 것만이 존엄이 아니라, 앉고 눕는 것 또한 삶의 일부라는 인식이다. 이는 인간을 몰아세우는 가치 체계에 대한 조용한 반박이다.
부부의 장면은 이 시의 정서를 가장 따뜻하게 드러낸다. “이마라도 짚어라”는 표현에는 거창한 사랑이 없다. 대신 삶의 피로를 알아보는 손길이 있다. 이 소박한 접촉이야말로 전쟁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을 다시 인간이게 하는 최소한의 윤리다.
마지막 구절에 이르면 시는 죽음마저도 평온 속에 놓는다.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라는 전제는 삶의 비참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끝을 “옥돌같이 호젓이 묻힌다”는 인식으로 전환한다. 존재의 마무리를 비극이 아닌 고요한 귀속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 시가 지닌 힘은 거창한 사상에 있지 않다. 외려 모든 것을 낮추고 덜어낸 자리에서 드러나는 넓이에 있다. 무등산은 높아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품으로 인해 위대하다. 미당은 그 산을 통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경지를 보여준다.
삶은 결국 높아지는 일이 아니라 넓어지는 일이다.
그 넓이에 닿은 자만이,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