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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Jul 11. 2024

​휴가, 다녀왔습니다. (완결)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휴가갑니다'가 출판되고, 나는 '소하랑'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남편을 간병한 아내로써, 그 기록을 모아온 작가로써. 라디오와 유튜브, 신문 등의 인터뷰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그리고 '휴가갑니다'를 읽은 독자들과 앞으로 '유방암에 걸린 간병녀'를 읽을 독자들이 가지게 될 생각들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이것이다.  


"어떻게 그걸 견디셨어요?"

"그래도 저는 작가님에 비하면 별거 아닌 것 같아요."

"작가님도 이렇게 힘내시는데 저도 힘낼게요."


    슬픔은 비교격이 아니다. 당신에게 닥친 슬픔은 분명 형용할 수 없을 크기의 역경일 것이다. 그것을 다른사람과 비교하며 애써 낮추지 말길 바란다. 나의 이야기는 그런식의 일시적 안도보다, 잘하고 있다고, 더 울어도 괜찮다고 다독이며 자신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길 바라는 다정한 용기를 담고 있다.


    알리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드러내고, 고통스럽게 글을 써내려가며 늪과 같은 현실을 전하는 것은 당신들에게 희망고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도 했으니 당신들도 할 수 있다는 어줍잖은 용기를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것이 전부다. 이 작은 여자가 헤쳐나가고 있는 대단한 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당면한 아주 평범한 어떠함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도 나와 같은 상황에 닥쳤을지도, 이내 해낸 누군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교훈이나 안도를 얻어야 할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법률사무소의 사무장이 되어 산재 피재자들이 남편과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돕고, 작가로서 글을 쓰며 당신들에게 현실을 전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은 어떻게 접어나가느냐에 따라 구겨진 종이뭉치와 종이학이 되기도 한다. 종이뭉치가 되었다고 울지말라. 구겨졌더라도 다시 펴서 접으면 된다. 어쨌든 같은 종이학이 되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빳빳한 종이학을 접는 것 보다 그렇게 구겨진 종이학마저 사랑할 수 있는 단단한 나를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그런 힘을 가득 모아 실행한 일이 있다. 바로 모발기부다. 태초부터 숱이 많은 여자는 여름이 되면 두피에 땀띠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번의 여름을 견뎌내며 머리를 길러냈다. 내가 머리를 기른 이유는 하나다. 암환자인 내가 이렇게 머리가 길어질만큼 살아있음을 아가 암환우들에게 기운을 나눠주고 싶었다.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노란고무줄로 꽁꽁 묶어 자르고, 지퍼백에 소중하게 포장해서 우체국에 달려갔다. 혹시나 범죄자의 증거품으로 보일까 싶어 검은 비닐봉지로 한번 더 싸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차피 이 머리카락은 가발을 만드는 회사의 직원에게 보내지게 되겠지만 작은 카드를 썼다.      


-나도 수술받고 치료받고 많이 건강해졌어. 너에게 나의 행운을 나누어줄테니 희망을 가득 품고 오늘도 화이팅!


    나의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착용하게 될 아가 암환우는 나의 긍정파워를 전달받을테니 분명히 건강해질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나의 남편이 지금 그러하듯이.

    그리고 지금 당신도.



  

    남편의 퇴사날. 다음날 우리는 휴가를 가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얘기치 못한 산재사고로 남편은 잔혹하고도 영원한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그가 사라지면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불안감. 그와 함께 만들어온 '나'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 같은 두려움. 그렇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살린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편은 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의 문턱에서 기어코 살아내었는지 모른다.


    그가 나의 곁에 머물러 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해서 나의 생이 다 할 때까지 그의 곁에서 간병을 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신은 나 혼자 아등바등하는 꼴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듯 내게 '유방암'이라는 휴가를 선사했다.


    그제서야 나는 멈추어 설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남편의 마음을, 나의 마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사랑하는 남편은 그러길 바란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사랑하는 남편은 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이란, 어느 하나가 희생해야 완성되는 단어가 아니다. 함께해야 완전한 우리이기에.


    '휴가갑니다'에서는 남편을 살리기 위한 수많은 생각과 선택과 책임 속에서, 찾아내고 두드리는 긍정의 힘을 담고 있다. '유방암에 걸린 간병녀'에서는 결국에는 무너져버린 나를 돌아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부디 당신에게 내가 걸어온 길이 일말의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남편은 두개골골절로 인해 인지장애가 생겨 치매를 앓고 있는 만기신부전 환자이자 당뇨병과 갑상선저하증, 왼쪽눈 실명, 손가락 절단, 중추성요붕증을 앓고 있는 산재환자이고, 나는 산정특례가 채 끝나지 않은 유방암 환자이자 남편을 간병하고 있다. 우리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고통스러운 운명의 장난 속에 찍혀진 부호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였다. 끝나지 않는 괴로움의 연속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고, 나를 보살피며, 주위를 인식하고 감사함을 일깨울 수 있는 휴가였던 것이다. 누군가가 이 책을 통해 고통이 영원하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거대한 파도앞에 담대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나의 두번째 책을 탈고한다.


    당신은 이 휴가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그저 무언가를 탓하고 있진 않은가.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진 않는가.

    나는 이 긴 휴가에서 많은 것을 얻고 간다.

    당신들에게도 그러한 여행이 되길 바란다.

    이제서야 말할 수 있다.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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